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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레시피 151

들깨 감자옹심이와 감자전 그리고 엄나무순

by 태생적 오지라퍼

30년 전에 같이 근무한 세 번째 학교 지인들과의 만남이다.

가장 먼저 용감하게 10여년 전 명예퇴직을 한 친구가 단양의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다.

정말로 오랜만에 3총사가 모두 퇴직을 하고 만나는 의미 있는 날이다.

한때는 4년간 매일 같은 교무실에서 같은 일상을 공유했던 사이이다.

어린 아들 녀석들을 데리고

놀러도 같이 가고 테니스도 같이 치고

학교와 가정의 고민도 함께 나누었었는데

그 사이 각자의 삶에 바빠서 엄청 오랜만에 만났다.

그래도 어제 만났다가 오늘 다시 만난것처럼 유쾌하고 즐거운 수다를 떨었다.

아마 5월 한 달 어치 수다 용량을 모두 다 미리 당겨서 사용한 것 같은 날이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전원주택에는 나무와 꽃이

한 가득이고 작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고 심지어 나무위로는 무공해 표고버섯까지 자라고 있었다.

(우리에게 한아름 버섯 선물을 주었다.

항암효과가 있다니 잘 말려서 주말에 남편에게 해주어야겠다.)

그리고는 감동스럽게 이른 기차로 내려간 우리를 위하여 아침을 챙겨주었다.

해물 누룽지탕과

직접 재배하고 있는 귀한 엄나무순을 삶아 데쳐서 초고추장이나 기름장에 찍어 먹을 수 있게 하고

맛난 김장 김치와 함께 차려주었다.

아무리 간단해도 무언가를 해서 밥상을 차려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친척도 아니고 친구들에게 말이다.

게다가 봄철 미각의 대명사인 엄나무순이다.

동물성에 도다리가 있다면

식물성으로는 씁쓸한 맛을 내는 엄나무순과 두룹이 손꼽힌다.

이번 봄에는 도다리쑥국도 못먹고

두룹도 못먹었는데 오늘 엄나무순을 먹게 된것이다.

그 옛날 우리는 그렇게 음식 만드는데 관심이 있거나 소질이 있어보이지는 않았었는데

(과학 수업에는 최고였지만)

이제는 각자 담근 김치와 별식 요리 이야기를 나눌 수준이 되었다는 것도 놀랍기만 하다.

세월이 우리를 이렇게 음식 고수로 만들어주었나 보다.


늦은 점심은 단양에서만 맛볼수 있는 음식으로 정했다. 들깨 감자옹심이와 감자전.

아무래도 강원도쪽과 가까우니 맛난 감자가 많이 나오는 듯하다.

감자옹심이를 두어번 먹어본 경험이 있다만 그다지 감탄을 느끼지는 못했었는데

오늘 단양 식당의 감자옹심이는 찰진 정도가 딱이다.

너무 무르지도 너무 단단하지도 않고 맛나면서 걸쭉한 들깨 베이스의 국물과 잘 어우러졌다.

감자전도 바삭하니 좋았고 밑반찬은 깔끔하여 추가로 먹었다.

친구들과 함께라서 혹은 주변의 산세가 멋있어서

더 맛있었을 수도 있다.

그 식당의 세 마리 강아지들은 큰 나무 아래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평온한 수채화 그림과도 같은 참으로 안온한 하루의

착한 먹거리였다.

단양의 대표 작물은 마늘과 사과라고 하니 다음에는 이것도 맛보기로 한다.


멋진 산과 물을 배경으로 천천이 산책도 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크게 웃는 시간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옛 친구가 그래서 좋은건가보다.

보양식을 든든하게 먹은 느낌이다.

청량리역에서 두 시간 거리의 단양에 내려와서

친구를 만나는데 근 10년이 걸렸다.

그러나 다음 번 만남은 2달 뒤로 결정했다.

친구 아들 녀석의 결혼식장이다.

제일 부러운 일이다. 그리고 엄청 축하할 일이다.

그 어리고 귀여웠던 녀석이 결혼을 한다니.

우리는 많이 늙었고 심지어 그 귀여웠던

우리의 아들 녀석들도 이제 늙어가고 있다.

식사를 즐겁게 나눌 횟수도 우리에게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말은 안해도 서로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이 더 소중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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