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많이 흘렀다만 아직도 상처는 남아있다.
세 번째 학교에서 인생 친구들을 만났던 계기 중
한 가지는
가장 어려웠던 환경의 학교였다는 점일 수도 있다.
그만큼 학교 생활이 어려웠고 서로 의논하고
힘이 되어줄 동료가 필요했던 것일게다.
그리고 어제. 그들과의 즐거운 만남의 시간에서
그 학교에서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표를 던졌던 그날이 생각났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내 교직 생활의 흑역사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아침 조회 시간은 매의 눈으로 우리반 학생들의 안위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들의 얼굴을 한번씩 살펴보고 지각과 질병을 확인하는 10분이 그래서 중요하다.
조회 시간에 나와 눈맞춤을 회피하고 멍하니 앉아있는 학생들은 그 전날 무슨 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내 교사 생활 중 나는 아침 조회에 안 들어간 적이 결코 없다.
질병으로 학교를 못나간 날은 며칠 있었어도 말이다.
어느 날처럼 아침 조회시간을 보냈는데
공기와 분위기가 조금 이상한 것은 감지했었다.
그런데 구체적인 상황이 다른 날과 다른 점은 없었다.
그리고 그 큰 일은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다.
교장 선생님에게 다음 날 아침
우리반 학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했다.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해주셨으면 참 좋았을 것을...
담임을 믿지 못하고 윗분들께 전화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우리 반 학생들 몇몇이(여학생으로만 이루어진 중2 학급이었다.)
사이다병에 소주를 담아와서 조회시간이 끝나고
(물론 나는 나가고나서)
1교시가 시작하기 전 10분의 쉬는 시간에 소주를 나누어 먹었다는 제보였다.
그리고 1교시에는 그 몇몇이 술기운에 엎드려 잠을 잤다고도 들었다.
1교시 교과 선생님께서 파악하셨어야 마떵한 것 아닌가
그래서 담임인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어야 했다는
그러면 내 선에서 잘 지도하고 마무리가 되었을터인데 하는 아쉬움은 지금도 남는다.
모든 문제는 잘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은 주어지는 법이다만 운도 따르지 않았다.
물론 학교에서 그것도 모르고 뭐했냐는 힐난조의 민원 전화였으리라.
그 내용을 나는 교감 선생님에게 전 교직원이 있는 교무실에서 큰 소리로 전달받았고
그 내용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았는데
(우리반 아이들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 컸다.)
그 내용을 전달하면서 교감 선생님은
담임이 조회 시간에도 안 들어가고 뭐했냐고 하는거다.
그 대목에서 나는 완전 머리가 돌았다.
내 평생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담임으로 조회와 종례를 안들어간 적은 없었다.
종치고 수업 시간에 늦게 들어간 적도 없다.
심지어 교과교실제 과학실 수업을 하게 되면서는 과학실에서 상주하면서
수업종 치는 것과 동시에 수업을 시작하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런 나에게 교감 선생님의 말도 안되는 지적질이라니.
(교감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께 한 소리를 들으셨을테지만)
평소 교무실에서 주무시거나 의자에 다리를 올리고 신문만 읽으시던 그런 교감 선생님이
나에게 할 지적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내가 조회에 올라가는지 아닌지도 알지 못하는 관리자에게
그런 사람이 관리자가 되는 교사의 승진 시스템에
화가 더 났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표를 작성했고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지만 그냥 그만둔다고 쓰고
교감 선생님께 제출했던 것 같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책상에 집어던지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왔다.
일찍 퇴근한 엄마를 유난히 반겨주었던 아들 녀석의 해맑은 미소가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그 때 나의 아들은 반짝 반짝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듯 하다.
하나뿐인 내 아들 녀석 준비물도 제대로 못 챙기고, 등교와 하교도 마중 못하면서
열심히 다녔던 교사 생활에 대한 회의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려운 환경 속에 있던 학생들에게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인생이 변할 수 있다고 무한 잔소리를 해댔던
나의 열정이 무슨 소용이 있었나 싶었다.
그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1% 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절망감이 들었다.
학교에 소주를 가져와서 먹어보겠다는 그들이 모의 작당을 할 때
나의 존재감이 그리도 없었나 싶어서 담임으로서의 카리스마 부족을 반성하기도 했다.
그날도 잠을 이루지 못했고(남편과 부모님께 사표를 냈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다음날은 물론 출근을 할 수 없었다.
(아들 녀석 학교 등교와 하교를 처음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내 생애 최초의 무단결근이었다. 아니다.
사표를 제출했으니 무단은 아닌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가 난 것은 학부모의 민원 전화 한통에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나를 공개적으로 개망신을 준 관리자에 대한 서운함이 99% 였다.
출근을 안하고 이틀이 지났을까 당시 교무부장과 학년부장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왔던 것 같다.
전화도 받지 않았던 나에게 무언가 위로를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날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출근을 했지만
교감 선생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 이후 아마 이야기도 한마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반 학생들의 얼굴도 다시 쳐다보는데까지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날 소주를 나누 먹었던 5명의 학생들 중
2명은 그 사건으로 놀란 학부모님께서 전학 처리를 했고
나머지 3명은 이후 별다른 사건 없이 조용한 삶을 보냈다.
지금이라면 이 사안은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알 수 없다. 지금은 사안처리가 엄청 복잡하고 힘든 시대이다.
나의 사표 제출은 그렇게 유야무야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어제 그 시절에 같이 근무했던 친구들도 기억 못할 정도로 말이다.
아마도 그 때 소주를 나누어 먹었던 그 친구들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괜찮다. 그 고비가 나를 더욱 강건하게 해주었을 것이고 나는 무사히 정년퇴직을 하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상처는 남아있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 친구들도 그때 자신들의 장난에서 비롯된 패기와 오기를 반등의 기회로 만들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어제 웃으면서 비로서 그 이야기를 내가 먼저 꺼낼 수 있었다.
거의 30년이 지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