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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주차 대화의 일상

손등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는 조금 더 깊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5월이 되고는 휴일의 연속이었으니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가

이제 3주차가 되니 진정한 백수가 되었다는 느낌이

확 와닿는 것 같다.

이제서야 현실 파악이 되었다고나 할까?


일단 하루에 나를 찾는 전화나 톡이 거의 없다.

이번 주를 살펴보자.

월요일은 <불꽃야구> 관련 이야기를 나눈 지인들 단톡방의 톡과

항암주사를 맞으러 간 남편의 상태를 체크하는 톡

갑작스럽게 소집된 평가회의에서의 두어번의 짧은 발언

항암을 마치고 온 남편과의 대화 그리고 고양이 설이와의 알아듣는 것을 가정하고 하는 혼잣말

<불꽃야구> 본방을 시청하면서 내는 자연스런 추임새

그 정도였다.

화요일은 오전은 남편과의 일상적인 대화(평소에도 말수가 엄청나게 적다. 이제 아프고 힘없어서 더 안한다.)

오후에는 이전 학교 실무사님께 찐빵과 고무장갑 전달하면서 잠깐 얘기나누고

번개팅 저녁 먹으면서 후배와 푹풍 수다 떨었으니

이번 주일 몫은 다 채웠다 싶다.

최대값이 있다면 말이다.

수요일은 오랜만에 업무 관련 전화 3통(잘 되면 정말 좋겠다만 미리 기대는 하지 않으려 한다.)

수영강사님 선물 관련 폭발한 톡 하나와(이전 글을 참고하시라.)

아픈 동생의 상태를 함께 걱정하는 톡 하나(걱정을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백화점에서 새로 리모델링 중인 푸드 코트를 못찾아서 직원에게 물어본 질문 하나.

그리고 막내 동생과의 전화 한 통이 모두 다이다.

그것도 입술이 들러붙을까봐 내가 통화를 자청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월말로 접어드니 각종 카드 대금 및 빠져나갈 돈 들에 대한 안내 카톡이 들어오고 있는 와중에

아들 녀석 소개팅이 한 건 들어왔고(주선해주는 분께 무한 감사이다.)

첫 해 제자의 카톡이 들어왔다.

<선생님, 스승의날을 맞아 직접 뵙지는 못하고 글로나마 인사드립니다.

퇴직 후에도 뭔가를 위해 늘 노력하시는 모습을 뵈오며 급격히 나태해진 저 자신이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마냥 좋지만은 안았어도 하시는 일에 보람과 자부심이 있으셨던 것과

마냥 싫지만은 않았지만 딱히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했던 지난 세월의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저는 지칠 때까지 이렇게 살아보려구요.

전 지금 공항에 와 있고, 스페인, 포르투갈, 알바니아, 그리스 여행 후 9월 중순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선생님 글 열심히 보고 있겠습니다.

사부님 건강, 아들 녀석의 얽힌 일들 그 사이 잘 해결되길 바라겠습니다.

가을에 돌아와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보다 퇴직 6개월 선배님의 글이다.

같이 명예퇴직한 와이프와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멋진 삶을 보내고 있다.

부럽다. 내가 그려왔던 퇴직 후 삶도 그런 것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운이 좋은 편은 못되나보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고 잊지 않고 톡을 보내주고 해외에 나가는 그 사실이 더 멋지다. 고맙다.

<그리고 사실 노력은 하는데 결과는 없단다.

그러므로 노력만해서 힘들고 마음만 상하는 중일 수도 있단다.>


오늘은 예상대로라면 대화라고는 한 번도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만

요새는 톡도 대화에 포함되는 것이니 포함해서 카운팅해보려 한다.

양치하거나 밥을 먹거나 설이와의 대화 이외에는 입 벌릴 일이 없는 이것이 바로 나의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제는 설이랑 놀다가 손을 긁혀서 오랜만에 큰 비명 소리도 내 보았다. 고맙다. 성량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오늘의 약간 혐오감을 주는 대문 사진이다.)

가끔씩 들어오는 상업용 광고톡까지도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요즈음.

오늘 울린 전화 하나는 심지어 잘못 걸려 온 전화였음에도 반갑기만했다.

그래도 오늘 아침 브런치 글의 반응이 있어서 그나마 나를 위로해준다.

<애정과 관심을 절대 구걸하지는 않겠다.> 나의 각오이다.

그렇지만 이런 나에게 격려해주는 톡을 보내주는 지인들은 진정한 내편이라고 인정하려 한다.

오늘 생각지도 못한 분들에게 오렌지 한 박스와

커피와 케잌 쿠폰을 받았다.

그들은 심지어 내 제자도 아니다.

이제 교사가 아닌 나의 스승의 날 맞이 심난한 마음을 헤아렸나보다. 감사할 따름이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소시지, 베이컨 굽고 참치와 양파 졸여서

스승의 날 자체 특식을 왕창 먹었고

쉐타 종류를 정리하고

할 일이 또 뭐가 없을까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 의미있는 일에 대한 소중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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