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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잠의 그 매력적인 유혹

그 매력을 거부할 만큼 중요한 무언가를 기다린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이 아직 가득한 나에게

먹을 것을 누를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것은

잠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일이 힘들어서, 비가 와서,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여하튼 다양한 핑계를 대면서 나는 잠을 청한다.

말똥말똥 중요한 일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면

쉬라고 하면 동의어로 자는 것을 떠올리는 상태이다.

자는 것 아니고 쉬는 것에는 어떤 형태가 있는지를

잘 모른다.(노는 방법도 잘 모른다. 산책과 스포츠 그

두 가지밖에는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러니 나의 시간을 나누면 일하는 시간 아니면

자는 시간 이렇게 이분법을 적용해도 큰 무리가 없다.


어제 오후 한강공원 산책을 마치고

저녁으로 갈비찜 두 개를 양념 국물에 비벼 먹고 났더니

갑자기 살짝 엎어졌던 창피함와 몸에 그 충격이 몰려오면서(시간차 공격이었다.)

온몸이 눅진눅진해지면서 잠을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40여년 넘게 학교에서 퇴근하면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나에게는 가장 달고 단 초저녁잠을 자던 시스템을 구사해왔으니 당연하기도 하다.

몸이 아주 피곤한 날은 내쳐서 푹 자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한 두시간 내에 다시 깨게 되고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집중하게 되는 그런 시스템은

수험생일 때부터 구사한 오래된 스킬이다.

어제는 막상 자려고 누우니 온 몸이 쑤셔대서 걱정이 조금은 되었다만.


나의 수면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이불이다.

한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잔다.

물론 자다가는 차버리기도 하고 돌돌 마는 신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일단 잠을 시작할 때는 분명 이불을 꼭 덮고 시작한다.

이불의 두께는 계절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폭신한 이불을 덮어야 완벽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누구와 이불을 함께 쓰는 일은 불가능하고 불편하다.

몇 년 전부터 추가된 내 수면의 동반자는 전기담요이다.

여름이 아니라면 침대 패드 아래에 넣어두고는 잠자기 전에 잠깐 약하게 틀어준다.

따뜻함이 온 몸으로 전해질 때쯤 잠이 집중적으로 몰려오고 그때 전원을 끄고 깊은 잠에 들면 해피하다.

요즈음 SNS에 아직도 전기담요 틀고 이불 덮고 자는 사람을 물어보는 게시물들이 있던데 바로 나다.

나만 늙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이탓만은 아닌듯 하여 안심이 된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옷도 두껍게 입히고

방은 지글지글하게 아랫목을 끓게 해주셨고

자기전에 이불도 꼭꼭 눌러 덮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도 추위를 많이 타셨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서 친정에서 한달 정도 출산 후 몸조리를 해보니 알 수 있었는데

아이도 챙챙 감싼다. 감기 걸린다고 말이다.

어려서부터 옷을 많이 입히고 따뜻한 곳에서 키우면 추위를 많이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어린아이를 홀딱 벗기고 키우는 것은

나의 양육 스타일에는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보고 행했던것과 정반대이다.)

요즈음에는 이렇게 키우는 젊은 부모님들이 많더라.

특히 아래 내복은 아예 입히지 않더라.

설마 기저귀갈 때 불편해서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 말이다.

나에게 손주 녀석 키워주는 행복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아마 꽁꽁 싸매두는 신공을 다시 선보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피로를 회복하는 가장 우선적인 방법은 무조건 잠이라고 생각했다.

잠을 푹 자지 못한 날은 머리가 활기차게 돌아가지 않았다.

내일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다면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요즈음 24시간 중 너무 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처음으로 들기 시작했다.

그 잠을 안자고 딱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지금까지 생의 반은 잠이었는데 말이다.

친구들이 잠을 안자고 무엇을 한다고 했을 때 비웃던 내가 말이다.

잠을 줄이고서라도 집중할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본 전제하에

이제 나는 나의 초저녁잠의 그 매력적인 유혹에서 조금은 벗어나 보려한다.

그런데 잠을 안자고 하는 일들이 멍하니 유튜브 보기라면(그것도 목적이 없는 단순 시청)

아마도 나는 그냥 자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내 오랜 신조를 다시 고수할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엎어진 충격으로 온몸이 약간 당기는 근육통이 있었는데

푹 자고 나니 오늘 아침 생각보다 더 심해지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잠의 매력 오브 매력은 자고 나면 덜 아파진다.

자면서 더더욱 아파지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응급실을 가야하는 상황이다.

코로나 19와 A형 독감에 걸렸을 때가 그랬다.

중요한 것은 푹 자고 일어났는데 오늘도 딱히 할 일은 없다.

내일은 중요하고 처음해보는 헤비한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핑계김에 오늘도 푹 쉴까? 날씨도 꾸리꾸리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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