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쓸데없는 기억력이 좋은 것이냐?
다시 그 막혔던 길을 되돌려 이번 수학여행의 핵심 스케쥴인 에버랜드에 도착했다.
(이전에 숙소 한 곳을 체크하고 말이다.)
아들 녀석 어렸을 때는 가족 행사로 그 이후에는 체험활동 인솔로 와본 곳이지만 꽤 오랜만이다.
주말인데 학생 단체 입장이 꽤 많다.
깃발 뒤로 함께 다니는 저 학생팀들은 무엇인가?
분명 학교는 아닌 것이 분명한데 요새는 학원에서 체험학습도 진행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낯익은 에버랜드와 캐러비안베이의 정문 출입구와 디자인도 많이 낡았다.
문득 아들 녀석과 캐러비안베이에 처음으로 갔었던 날이 생각난다.
원래도 물을 무서워하지만 워터파크에서 한번에 몰려나오는 물을 보고는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었다.
아들 녀석의 손만 꼭 잡았을 뿐 선글라스도 모자도
다 날려보냈던 그 물따귀의 얼얼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제 나와 같은 인솔 아르바이트를 하는 퇴직 교사
한 분은 이곳에서 여섯 살짜리 아들 녀석의 손을 놓쳤다고 하셨다.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모른다고...
그 상황이 십분 이해된다.
나도 아들 녀석 손에 멍이 들 정도로 꽉 붙잡고서야
겨우 놓치치 않았으니 말이다.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과 즐거움을 주는 곳임에 틀림없지만 부모님들의 집중이 필요하다.
나는 입구에서 구름에 가렸다가 나왔다가 술래잡기 중인 태양 사진을 찍으면서(전공은 못 속인다.)
식당 점검을 나간 선생님들을 기다렸다.
에버랜드에는 아는 사람들만이 아는 숙소가 뒤에 숨어있다.
마침 1개의 학교가 그곳을 숙소로 예정하고 있다하여 방문했다.
친정집 온 가족이 출동하여 1박을 하면서 즐거워했던 추억의 장소이다.
세세히 생각은 안나는데 남편이 놀이동산 자유이용권 티켓을 여러장 선물 받았던 것 같다.
동생들까지 모두 총출동하는 기회가 많지 않으니
나는 겸사겸사 숙소를 예약했던 것 같고
(그때만해도 핫플이었다.)
친정부모님까지 오랜만에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도 내 기억의 마지막 부모님과의 물놀이였다.
아버지는 부산 출신이라 수영을 좋아하셨다.
뇌졸중으로 약간의 다리 불편이 있으셨을때도 대중목욕탕에서 걷고 미니 수영을 해보시는 것으로
자체 재활을 대신하셨을 정도이다.
대중목욕탕에서 발차기를 하는 어르신들은 아마 대부분 이런 재활 운동인 셈일 거다.
그래도 물이 튀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만...
그날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고
저녁에는 고기를 왕창 구워먹고
놀이동산 야간개장에 가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무서운 놀이기구를 종류별로 다 타고
(난 못탄다. 막내랑 갔었다.)
불꽃놀이까지를 흠뻑 즐겼던 아들 녀석의
신나고 환한 얼굴이 나는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아들 녀석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제 톡으로 물어보았다만.)
그때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내 주위에 이제는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슬프다.
다음은 그 옛날 소풍 장소의 대명사인 한국민속촌이다.
진입로부터 주차장까지 꽉꽉 막혀있다. 아직도 인기가 있다니 대단하다. 엄청 오랫만이다.
외국인들이 훨씬 많았던 그 곳이 이제는 가족놀이 공간이 되었고
평일에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한다.
부산에서 오는 한 초등학교는 도자기 만들기와 한복디자인하기 프로그램을 예약했다고 한다. 잘하신거다.
이런 특정한 프로그램이 있어야 무언가를 얻어가게 되지 아니면 그냥 뛰어다니다가 끝난다.
초등학생들은 열심히 만들거다.
그러나 우리의 우주 최강 막강 중2는 만들기를 할지 아니면 장난감과 쓰레기를 양산해낼지는 알 수 없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관람객들이 몰려 나오고 주차장을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다.
여기도 1차선 도로이다. 외부 인솔일 때 제일 곤란한 점은 교통이 막히는 것이다.
시위 때문일 수도 사고 때문일 수도 있는데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간다. 초조하기 짝이 없다.
부산 선생님들은 수원역에서 부산가는 기차를 타야만 한다.
비오고 시간 없는 와중에도 의무감으로 수원 화성 주변을 한 곳 더 보고
마지막에 들리고자 했던 요즈음 핫플 수원스타필드와 그 내부에 있는 스포츠체험센터는
한번 가보셨다해서 전화로만 확인 작업을 진행한다. 아마 중2 남학생들은 제일 좋아라할 곳일게다.
안타깝지만 기차 시간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주말이라 곳곳에서 너무 많이 막혔고 사실 출발부터 하루에 모두 다 돌기에는 다소 무리한 일정이었다.
뚜렷한 건물위치와 내부 시설은 확인할 것이 많지 않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곳이라면 더더욱 믿게 된다.
그러나 과한 믿음은 안된다. 확인 방문이 꼭 필요한 이유이다.
일행과 해산 후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방법을 선택했다.
수원에 시어머님께서 오래 사셨기 때문에 익숙한 방법인데
마침 용산역까지 오는 무궁화 열차의 입석을 구해서 재빨리 탑승했다.
입석은 사실 대학교 MT 갈 때 빼고는 타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힘들고 빠른 귀가가 필요했다.
(고양이 설이가 혼자 집에 있는데 불을 안켜두고 나왔다. 무서워한다.)
3호차와 4호차 사이 화장실 앞에 서서 지나가는 도시들을 살펴본다.
군포, 금정, 안양 이곳에도 나의 추억이 있다.
목동에 살 때 수원 시댁을 가려면 늘상 지나가던 곳이다.
누군가를 꼭 보려고 언덕위를 찾아가보았던 도서관도 있는 곳이다.
해가 지고 있는 안그래도 멜랑꼬리해질 그 시점에 무궁화호 기차에 서서 보는 추억의 도시들이라니...
배가 고파서 단백질바를 먹고는 있지만 목이 순간 순간 막혀왔다.
그런데 안양역 이후에 잘 살펴보니 4호차가 조금 이상하다. 좌석이 없다.
그리고 좌석은 옆으로 누워있고 무엇보다도 내게 충전을 위해 필요한 콘센트들이 많이 있다.
좌석표가 필요없이 그냥 앉아서 가면 되는 곳이다. 신기하다.
기차를 하도 많이 타고 다녀서(출퇴근으로) 마스터가 된 막내 동생에게 물어보니
예전에 식당칸이었다가 코로나 19 이후에 그렇게 변화된 곳이라고 한다.
그렇다. 예전에 기차에는 낭만의 식당칸이 있었더랬다.
생맥주도 한잔 하고 커피도 마시고 영화배우 기분을 낼 수 있었더랬다.
운수 대통이다. 이곳으로 올라탄 것이... 안양역이후에는 핸드폰 충전도 하고 앉아서 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서서 추억을 되새겼던 수원역에서 안양역 사이의 그 구간의 아스라함을 느낄 수 있어서
더더욱 좋았던 입석 체험이었다.
언제 또 입석을 타보겠나 무궁화호 화장실의 꾸리꾸리한 냄새를 맡아보겠나 싶다.
다행히 서울은 비가 많이 안 온 듯 하고 이제 해도 제법 많이 길어져서
설이는 나에게 많은 화를 내지는 않았다. 눈 흘김 두어번 정도였으니 다행이다.
츄르 하나 주고 궁디팡팡해주고 몇 번 안아주었더니 평소대로 돌아왔다.
아르바이트였던 것은 분명 맞는데 어쩌다보니 나의 추억 여행이었던 것 같은
힘들었지만 고맙고 의미있었던 하루가 그렇게 마감되었다.
차를 오래 탄다는 것은 사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피로도는 꽤 있다.
그래서 나는 역세권이나 직주근접을 선호한다.
(3편으로 끝내려다보니 내 글 답지 않게 조금 길다.
기차이야기는 4편에 썼어야하나.
그런데 4라는 숫자를 약간은 기피하는 편이다.
3이라는 숫자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