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사랑이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은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학위 논문을 쓸때를 제외하고는...
그때는 내가 이렇게도 글을 못쓰는 사람이었나
어느 날은 다섯줄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논문 작성에 절망한 적도 많았다.
요즈음 스래드에 보면 나와 같은 증상을 나타내는 박사학위 과정생을 많이보게 되는데
묘한 위로감과 동질감을 갖게 된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그러다가 다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작년 브런치를 시작한 때부터이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별로 없는 사람은
편지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고(두렵지 않으면 좋아하는거다. 내 생각이다.)
그런 성향때문인지 나는 엽서를 많이 좋아하는 편이었다.
외국에 가거나 지방에 가는 경우 우연히라도 소품샵에 들르게 되면
다른 것에는 별로 끌리지 않았는데 유독 엽서에는 눈길이 가곤 했고
한 두장씩은 사가지고 와서 냉장고에 붙여두거나
책 속에 끼워두거나 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엽서에 대한 관심이 뚝 끊겼는데
아마도 일상이 바빠지고 편지글을 별로 쓰게 되지 않고(쓸 사람이 없어진거다.)
이제는 톡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이니 더더욱 엽서를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다 꺼진 사랑도 시기와 상황이 맞으면 부활하는 것인가보다.
그래서 <꺼진 불도 다시보자.>는 말도 있고
헤어진 사람이랑 다시 불같은 재회를 하는 경우가 생기나 보다.
얼마 전 동생과의 북촌 탐방에서부터 다시 엽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3월 4일 제주 여행에서 부터이다.
제주에 가기 전 보았던 많은 유튜브에서 음식 맛집과 디저트 맛집 탐방에 이어서
MZ 세대 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소품샵 투어이었다.
유행을 쫓아가지는 않지만 멀리하지는 않는 성향이라(트민녀를 추구하기는 한다. 구입은 하지 못하더라도)
지나가다 보이는 소품샵에 두어번 들어가보았는데
예전처럼 다른 것에는 눈길이 별로 가지 않았지만
엽서가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것을
내가 이것을 가져다가 뭣에다 쓰겠냐 싶어서 놓고 왔었다.
제주 특징을 살린 엽서가 많이 있었다.
돌담이나 한라산, 그리고 제주 바다의 정취가 가득한. 그리고 귀여운. 나는 무엇이든 귀여운 스타일을 추구한다.
예전에 산 엽서들은 간단한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었고
학생들에게 선물 주는 것이 쓰임새의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편지를 보낼 곳도 선물을 줄 사람도 없으니
사는 것이 웬말이냐 싶어서였다.
얼마전 동생과의 북촌 탐방에서는 고양이 그림의 엽서를 몇장 구입해서
고양이를 좋아라하는 조카에게 선물로 주었었다.
엄청 좋아했다. 엽서라서 좋아한게 아니고 고양이 그림이라 좋아한것이다만.
그런데 금요일 DDP 소품샵에서 또 다른 스타일의 고양이 엽서에 몰입하게 되었고
세 장이나 접어들었다.(이 글의 대문 사진이다.)
흰색 고양이 단독샷은 우리집 고양이 설이와 가장 비슷한 그림이라 골랐는데
막내 동생이 설이랑 안 닮았다고 한다.
설이는 눈이 더 무섭다고...
아니다. 설이가 츄르를 달라면서 나를 쳐다보는
그 간절하고도 그윽한 눈빛과 똑 닮았다.
그래서 고른 것이다.
무려 15장의 고양이 그림은 고양이의 요망한 포즈를 골고루 나타낸 것이 멋져서 골랐다.
화남과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과 뾰루퉁함과 자신의 미모에 자신감을 보이는 일상이 잘 나타나 있다.
내 표정도 이렇게 다양한가 싶다만
점점 나이드니 무표정이 되어간다.
그래도 화난 것만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고른 고양이의 태도별 포즈 그림은
설이를 더 이해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담았다.
1번 포즈는 주로 설이가 낮잠 잘 때이고(그런데 몸을 요상하게 꼬고 자고 있으면 왜 만져주고 싶은거냐?)
2번 포즈는 책상 위의 튀어나온 것들에 올라가 글쓰는 나를 보고 있는 모습이고(열공하고 있는 모습이다.)
3번 포즈는 내가 부르면 귀찮게 뭐하는 거냐하고 냥냥펀치를 날리기 일보 직전에 째려보는 모습이다.
이런 멋진 엽서를 어떻게 안사고 배기겠나.
며칠 간 내 노트북 옆 자리에 놓고 내 마음을 기분좋게 해주고 있다.
그날 저녁부터 고민 끝에 놓고 온 에코백 하나가 눈에 밟힌다.
하얗고 길쭉한 모양의 에코백에 샛노란색 고양이가 길게 그려져있었다.
에코백만 들고 다니는데 하나 더 추가하기가 그래서 망설이고 망설였는데 데려 올걸 그랬나보다.
가격도 5,000원이었는데
지구를 살려야 한다면서 미니멀리즘이라면서
애써 외면하고 왔는데
며칠이 지났는데도 눈에 아련하다.
샛노란 개나리색의 고양이라니... 실제로 본 적은 없고 상상속의 그림인 듯 하다만...
고양이는 참으로 요망한 동물이다.
그리고 사랑 그 자체이다.
까맣게 잊어버렸던 엽서 사랑의 마음까지도 부활시키는 묘한 능력이 있다.
그나저나 이 엽서는 한 동안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다음에 우연히라도 마주치게되는 제자 녀석에게 선물로 줄까한다.
그게 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글을 쓰고나니 드는 의문은
내가 엽서를 좋아하는것이냐 아님
고양이 그림을 좋아라 하는 것이냐
그것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