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 관찰자 시점
아침 일찍부터 설이는 부시럭 부시럭 사부작 사부작 집안 곳곳을 돌아다닌다.
발을 들고 다니는 것은 아닌데 발바닥은 일부 들려있다.
그래서 누가 보기에는 아장아장 걷는 것처럼 보일 듯 하다.
그 안짱다리 스타일이 설이 귀여움의 한 포인트이다.
이방 저방을 돌아다니고 집안 구석구석 이상 여부를 파악하는 듯 하더니
마침내 결심을 한 표정으로 엄마의 침실로 향한다.
오빠의 침실은 아무리 두드리고 기다리고 그 앞에서 애교 콧소리를 내보아도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아는 표정이다.(고양이 교육은 단호해야 한다는 주의란다.)
엄마는 항상 그런 것처럼 방문을 활짝 열어두고 왼쪽으로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다.
침대에 살짝 올라가서 머리카락을 한번 살짝 만져보지만 반응이 없다.
포기하고 내려갈까말까를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한번 머리카락을 조금 더 세차게 만져본다.
엄마가 몸을 설이쪽으로 움직인다.
그리고는 설이 이름을 두어번 연달아 부르면서 궁디팡팡을 해준다.
엄마의 설이~설이~ 애정섞인 부름에 만족했는지
궁디팡팡을 한 열 번쯤 받으니 만족했는지
발가락을 번갈아가며 꾹꾹이를 하면서
침대의 푹신함을 느껴보다가 몸을 길게 침대에 누인다.
엄마 옆에 나란히 누워있는데 졸린 눈은 아니고
엄마의 기상을 기다리는 눈치이다.
엄마의 기상과 함께 졸졸 따라다니기 신공을 개시한다.
그래야만 아침밥과 물이 제공되는지를 이미 잘 아는 표정이다.
엄마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있는 고양이다.
설이가 가장 좋아하는 오빠는 딱 졸음이 와서 막 잠이 들려는 그 무렵에 출근을 한다.
눈을 그냥 감을까 아니면 오빠를 따라 나설까를 고민하는 듯 한데
결국은 출근하는 오빠 뒤를 촐랑촐랑 따라나섰다가
중문을 앞에 두고 세상 안타까운 이별극을 찍는다.
현관문이 닫히고도 미련이 남는지 한참을 중문앞을 서성이는 것을 보니
설이 최애는 오빠가 확실하다.
하루 중 어느 곳에 가장 오래 머무는지를 살펴봤더니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오전에는 직사광선은 아니지만 따스한 거실 한 복판의 식탁 아래쪽이고
오후에는 자기 건물 3층이 주된 거주 장소인데
겁이 나거나 식탁의자를 스크래칭한게 걸리거나
꽃을 흐트러트리거나 기타 잘못한 일이 발각된 경우에는
침대밑이나 TV 뒷편 혹은 엄마의 옷방 뒷편 구석에 숨는다.
그리고 엄마가 불러도 불러도 절대 꿈쩍하지 않는다.
이 집에 대해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엄마의 반응까지를 다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시간에 어디가 가장 적합한 위치인지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떤지를 다 알고 있다.
오전 잠을 실컷 자고 나면 엄마 주위를 다시 맴돈다.
무언가 특식이나 공놀이를 하고 싶은 눈치이다.
엄마가 그걸 눈치 못채고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빨간 고무줄을 찾아와서 혼자 이리 던졌다 저리 던졌다 재주를 피우고 있다.
고양이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오랜 기간 혼자 집을 지키며 놀았던 노하우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은 중간 중간에 출입구 모니터에서 이상한 소리가 몇 번 들렸는데
그때마다 귀를 쫑긋쫑긋 세우며 소리나는 것을 쳐다보는 것으로 보아 청력에는 이상이 없는 듯 싶다.
이제 여섯 살이 되어가서 얼굴에 주름도 생기고
뱃살이 늘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살이 찐 것은 아니고 한 번도 깍아주지 않은 털이 배쪽에 늘어져서 그리 보이는 것 같다.
고양이 미용실에 한번 데려가면 좋을 것 같은데 오빠가 딱 질색이랜다.
공포감에 설이가 날뛰고 움직여서 다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럴 것도 같다.
지난번 청소업체가 대청소를 할 때 엄청 높게 점프하고 뛰어나가다가
엄마 목 주위를 세차게 할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설이의 점프 실력은 높이뛰기 선수급이란다.
점심은 간단히 먹는다.
멸치말린 것이나 열빙어 말린 것을 좋아라하고 뭐니뭐니해도 제일 좋아하는 것은 고양이 츄르이다.
츄르는 하루에 딱 하나만 주는데 그 시기는
엄마 마음이나 대략 저녁 6시경이다.
냉장고에서 츄르를 꺼내고
눈물자국을 깨끗이 해주는 마법의 물휴지를 한 장 꺼내면
설이는 그 시간이 온것을 알고
식탁 의자위에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눈꼽을 닦는 일을 해야만 츄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표정이다.
내키지는 않지만 자기 몸을 기꺼이 내어준다.
츄르를 먹는 동안에는 세상 착한 고양이가 되어서
엄마가 내민 손에 자기 발도 기꺼이 내어주고
하트 뿅뿅 눈동자도 보여주고
코 밑 털과 눈 사이 미간을 만지게도 놔둔다.
그리고는 발라당 누워서 츄르를 먹은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설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꼬리를 만지는 것이다.
엄마는 설이의 오토매틱으로 움직이는 꼬리가 신기하고 이쁜 모양인데
설이는 궁디팡팡과 얼굴 만지는 것은 좋아라하면서도 꼬리를 만지는 것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싫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자신의 호불호가 얼굴과 표정에 단호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니 자존감도 매우 높은 상태이다.
엄마와 공놀이를 할 때도 페이크에 절대 넘어가지 않고 공을 끝까지 주시하는 것으로 보아
지능도 고양이계에서는 상위 5% 안에 들것 같다.
물론 미모도 상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안타깝게 조금씩은 늙어가는게 눈에 띈다.
실제로 볼 때보다 사진을 찍으면 더 잘 느껴진다.
잠이 쏟아져서 하필 실눈이 되었을때의 사진을 찍어서
요즈음 유행하는 ChatGPT 에게 지브리 스타일로 만들어달랬더니 저렇게 만들어주었다.
실제보다 살은 더찌게 나왔고
눈은 찢어지고 화가 잔뜩 난듯 퉁명스럽게 나왔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의 정확한 판단으로 볼때
원본 사진을 잘 못 찍어서인지 아니면
ChatGPT의 고양이라는 동물의 데이터에 조금은 오류가 있는게 분명하다.
오늘 하루를 쫓아다니면서 관찰한 고양이 설이는
똑똑하고 이쁘고 눈이 절대 찢어지지 않았고 뚱뚱하지도 않은
자신감 충만하고 자기애로 똘똘 뭉친 고양이인데 말이다.
오빠가 보면 당장 사진을 내리라할지도 모른다.
실물보다 너무 못나왔다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ChatGPT는 자느라고 실눈을 뜬것과
화가나서 째려보는 눈을 아직은 구별하지 못한다.
더 많은 데이터와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