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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관찰의 힘

고양이 설이만큼만

by 태생적 오지라퍼

모든 일의 시작은 관심과 관찰에서 비롯된다.

사람에 대한 관심도 그렇고 과학적인 연구의 시작인 관찰도 그렇다.

모든 일의 시작은 관심과 관찰이다.

그리고 그 관심과 관찰의 시작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하필 그 많고 많은 시간 중에 딱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나와 만났으니 말이다.


관찰의 거성을 만났다. 우리집 고양이 설이이다.

새로운 것을 보면 그렇게 열심히 뚫어지게 보곤 한다.

그 열중의 시간이 십여분에서 끝난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 시간만은 본인의 에너지를 새로운 물건이나 새로 만나는 사람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집중하고 있는 고양이 설이의 눈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학교에서 종종 보았던 눈이다.

주로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녀석들의 눈과 입모양과 매우 흡사하다.

설이의 관찰 대상은 다양하다.

오늘 아침은 휴대용 충전기였고

어제 밤에는 목걸이용 줄이었으며

지난 주일 최애 탐방 장소는 아들 녀석 방의 드레스룸이었고

여전히 즐겨하는 관찰은 열빙어 해부이다.

매번 좋아라하는 열빙어 해부인데도

어떤 날은 머리꼭지까지 산산 조각을

어떤 날은 머리 꼭지 부분은 손도 안대는

그 분류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자신에게 공개되지 않은 미지의 공간에 대한 탐구를 계속 시도한다.

아들 녀석방에 있는 화장실과 세탁실 공간만 고양이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아들 녀석방 화장실에는 미로가 있더라.

나도 몰랐는데 한번 따라 들어온 설이가 대번에 찾아냈다.

세면대 아래편으로 해서 아마도 세면대 부분의 밸브들이 숨어있는 빈 공간이 있나보다.

절대 열어주지 않으려하는데(그곳에 숨으면 내가 꺼낼 수가 없다.)

오늘 아침에도 열어달라고 내 눈을 청명하게 쳐다보았다.

세탁실도 세탁기 고장의 원인이 되거나 혹시 나 몰래 들어가서 있을까 싶어

그리고 그것을 내가 놓칠까 싶어서 절대 열어주지 않는다.

설이를 못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못믿는다.

이렇게 뛰어난 관찰과 탐구 본능을 갖고 있는

설이 스타일의 사람이라면 분명

어느 분야에서이건 학자로 뛰어난 성공을 했으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모든 연구의 시작은 이런 세밀한 관심과 관찰이다.

관심과 관찰의 범위를 넘어서면 덕후 수준이 되기도 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도 하는데

핀트를 잘못 맞추면 스토커가 되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그래서 사물에 대한 관찰보다

한 수 더 어려운 법이다.

요새 나와 아들 녀석이 공통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아가씨가 한 명 있다.

아들 녀석의 독립 거처를 구하러 간 날 만난 아가씨인데

두 시간 정도 봤던 외모나 품성이나 엄마와의 관계가 나무랄데가 없었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오래했으니 봐왔던 학생들의 숫자는 엄청날 것이고

그래서인지 첫 인상으로 판단하는 빅데이터가 자동 내장되어 있는데(물론 과신하면 절대 안된다.)

이 아가씨는 엄청 마음에 드는거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들 녀석도 그렇다한다.

그리고는 같은 오피스텔 같은 층이라

로맨스 영화같은 스토리의 전개를 내심 기대했었다만

입주 2주가 지나가는데 도통 본 적이 없다한다.

운명이 아니었던가 씁쓸하기도 하다.


그리고는 어제 점심을 먹으면서 옛날 옛적 이야기를 해주었다.

길이나 버스에서 스쳤는데 이상형이라

집까지 쫓아갔다더라하는 이야기를...

아들 녀석이 질색을 한다. 스토커라고...

그래 그 옛날의 멋진 사랑의 시작이

(물론 나는 한번도 이런 경험은 없다만)

지금은 스토커가 되는 시대이기는 하다.

10번 찍어서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은

(대부분 남자의 지극한 정성과 노력을 의미했었는데)

이제는 곧장 접근 금지 신고 당할 스토리이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소개팅 만남의 식사비용은

왜 아직도 남자가 내는것인지는 알 수 없다만.

할 수 없다. 강력한 운명의 힘이 필요하다.

가슴 떨리는 운명이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데 어젯밤 늦게 톡이 하나 들어왔다.

저녁 약속 후 귀가길에 그 아가씨를

엘라베이터 앞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자기를 기억 하더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여전히 느낌이 좋더라고

그리고 가장 마지막 말은 <내가 알아서 잘 할께> 였다.

나의 더이상의 관심은 사양한다는

강한 뜻의 피력이었을게다.

열심히 노력해보겠다는 의지의 발현일수도 있다.

제발 그래다오.

이번 관심에 대한 집중 연구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해보자꾸나.

설이가 가지고 있는 집중력 정도를 투여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너를 무지 무지 좋아라하는

그래서 너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고양이 설이를 벤치마킹하렴. 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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