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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행운 3종 set

세가지 각각 다른 느낌의 고양이와도 같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날이 없다만

오늘은 특히 중요한 날이었다.

남편이 3차 항암을 마친 후 중간 결과를 보는 날이고 4차 항암주사를 맡는 날이었다.

오늘 결과에 따라 이후 치료 일정도 결정된다.

말은 안해도 남편도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나도 초연한 척은 했지만 걱정이 많이 되었다.

10시 반쯤 행운의 소식이 전해졌다.

암의 크기가 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엄지손톱만했던 크기가 이제 새끼손톱만해졌다는 기쁜 소식이다.

지금까지 했던 항암 신약이 효과적이었다는 소리이다.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치료를 계속해보자 한다. 다행이다.

오늘의 첫 번째이자 오늘 나에게 온 최고의 행운이다.


오후에는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였다.

한 달 반 정도가 지나면 뿌리에서부터 올라온 흰 머리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지금까지는 친구가 예약을 해주고 같이 가주고 했는데

친구도 가족이 아파서(이번 눈길에 미끄러져서 골절이 되었다고 한다.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오늘 처음으로 혼자 방문하였다.

친구와의 수다가 생략되니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나니 두어살은 족히 덜 늙어보인다.(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만)

그리고 오늘 정성껏 다듬어준 머리 모양이

마음에 쏙 든다.

오늘 나에게 온 두 번째 행운이다.


볼락과 고등어를 굽고

야채와 두부 가득 넣어 약한 된장국을 끓이고

기본 반찬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누가봐도 영양식이다.)

<김성근의 겨울방학>이라는 프로그램을

항암주사를 맡고 온 남편, 퇴근한 아들과 함께 시청하였다.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 이야기 아니고

쉬는 여유 시간과 제자들과의 여행을 찍는다는 취지인데

김성근 감독님의 말투와 생각에서 자꾸

나의 친정 아버지가 겹쳐 보인다.

일본어를 섞어쓰고 잔소리도 엄청 심하며

말과 행동이 면도날 같은 면이 있고

식사를 드시는 모양도 비슷하고

양념게장을 씹어드시는 것도

맥주 한잔을 반주로 드시는 것까지도

너무나 비슷하다.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최강야구>를 같이 하는 제자들이

제주도를 모시고 가서 이것저것을 함께 하고 있었다.

나는 왜 아버지를 모시고 제주도 한번 가지 못했었던가?후회가 밀려온다.

모시고 갔으면 아버지도 김성근 감독님처럼

환하게 웃으셨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한 가득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의 정년을 축하한다면서

지난 5월에 바쁜 시간을 맞추어

제주에서 멋진 시간을 함께 보내준 제자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 때의 맛났던 음식과 숙소와 고마움까지도 다시 생각났다.

고마움을 담아 톡을 보내두었다.

그래도 어디냐?

이 프로그램을 가족 모두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것 아니냐.

그러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제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이야기 나누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것 아니냐.

오늘 나의 마지막 세 번째 행운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3종 세트가 완성되는 날도 쉽지는 않다.

그 기념으로 나는 나에게 있는 고양이 디자인 3개를 그린 그림을 소개해본다.

하나는 요즈음 열심히 들고 다니는 자주색 에코백이고

다른 하나는 카드를 넣을 수 있는 투명한 핸드폰 커버이고

마지막 하나는 어느 영화 포스터인데 마음에 들어 찍어 놓은 것이다.

오늘 나에게 온 행운을 각각 다른 느낌의 고양이로 변신시켰다고 답지 않은 그림이지만 의미를 부여해본다.

내일도 오늘만큼만 평온한 날이기를 기원한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도

각자 나름의 행운 3종 set가 찾아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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