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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 고양이 설이, 세번째

내 결에는 항상 설이가 있다. 털을 무지무지하게 날리면서...

by 태생적 오지라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장 친밀도가 높아지는 것은 고양이이다.

어디를 가던지 나를 쫓아다니고 낮잠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의 존재와 위치를 계속 확인하려 한다.

항상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마냥 귀엽기만 하다.

아마 손주 녀석이 태어나기 전까지 내 최애는

관종 고양이 설이일 것이 확실하다.


관종 고양이 설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어둠이다.

보통 상식적으로 고양이는 어두운 곳에서 더 잘 보이는 빛나는 눈을 가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집 고양이는 어두운 것을 매우 싫어한다.

어두워져서 집에 들어가면 중문을 긁으면서

거의 직립 보행을 하면서 난리가 난다.

할 수 없이 부분 조명 하나를 켜놓고 나가야하니

우리 집 전기요금의 1/20은 설이 몫이다.


요새 설이가 가장 좋아라하는 놀잇감은

고양이가 좋아한다는 식물의 향을 발라둔

막대 사탕이다.

그 막대를 보는 순간 눈이 하트로 변하면서

막대 사탕 부분을 쓸고 빨고 깨물고 난리가 난다.

십여분은 그 주위를 떠나지 못한다.

그런데 설이의 막대 사탕 사랑은

십여분을 넘기지 못한다.

십여분 후에는 내 주위로 다시 돌아오니 말이다.

그러므로 화장실에 간다던지 하는

급박한 일이 발생하면 나는

그 장난감을 슬며시 꺼내놓곤 한다.


설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는(츄르를 제외하고는) 멸치나 열빙어 종류이다.

열빙어는 많이 비싸서 특식으로만 가끔 주고 멸치는 종종 주는데

공통점은 머리 부분을 빼놓고 나머지 부분만 먹는다는 점이다.

<어두육미>라는 용어가 무색하게도 머리 부분은 손도 대지 않는다.

이유가 있을텐데 아직 알아내지는 못했다.

Chat GPT 에게 물어봐야겠다.


설이의 술래잡기 최애 장소는

거실에서는 TV 뒷자리

내 방에서는 문 뒤편이나 책장 두 번째 칸

그리고 남편 방에서는 침대 아래 빈 칸에

숨는 것을 즐겨한다.

아들 방은 문을 꽁꽁 잠가두고 다니니

딱히 최애 자리가 없지만

가끔 내가 열어줄 때면

침대 모서리나 바퀴달린 의자에

올라가 있기도 한다.

보통은 거실에 있는 1인용 소파를 자기 침대로 사용하지만

아들이 늦게 들어오거나 하는 날에는 여지없이

내 발 밑에서 자고 있다가(문소리가 잘 들린다.)

띡띡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면

빛의 속도로 튀어나간다.

그러니 주변에 털이 날려

매일 두 번씩 청소기를 돌려대게 해도

예쁨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몇 번이나 나의 관종 고양이 설이를 그려보려 시도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려보아도 비슷하지도 않다.

그림에 설이의 귀여움과 총명함이 영 나타나지지가 않는다.

잘 그리는 그림은 아니지만

특징을 잡아서 독특하게 그린다는 평을 받고 있는

나의 화풍으로는

(옛 제자의 평이다. 그게 잘못그린다는 말을 멋지게 해준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아직은 관종 고양이 설이의 모습을 나타내기에는 실력이 영 부족하다.

그래도 한 달에 한번쯤 마땅하게 그릴 사진을 못찾은 경우

나는 주저없이 설이의 모습을 그려보려 한다.

식빵자세도 그려보고

궁디팡팡을 바라면서 엉덩이를 내밀은 모습도

천사처럼 자고 있는 모습도

신기한 것을 보고 눈이 똥그래진 모습도

무언가 불만에 차서 나를 째려보는 모습도 그려보려 한다.

오늘 그린 그림은 온몸을 한덩어리로 꼬아 만든 요가 자세인데 너무 뚱뚱하게 그려진 것 같다.

설이가 그림을 알아본다면

너무 밉게 그렸다고 눈을 한번 흘겨줄 것 같다.

그리고 그리다보면 설이의 본 모습을 잘 나타낸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림은 단기 속성으로 실력이 늘어날수는 없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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