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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더러운 이야기 : 귀지와 비듬 제거

두통이 나으니 수다가 떨고 싶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역시 진통제의 힘인가? 두통이 조금은 잦아들고 있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일찍 잠이라도 잘까 했는데

미세한 두통이 있으면 사실 잠도 잘 들기 어렵다.

이럴 때 누워서 ASMR 수준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만

오늘은 그 방법도 통하지 않고 정신이 또렷해져서 다시 일어나 앉았다.

고양이 설이도 따라서 일어나 거실로 온다.

눈은 반쯤 감긴 채로 말이다.

내 보디가드인가보다.

이리 충실한 보디가드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내가 보는 ASMR 수준의 유튜브 동영상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조금은 더러운 이야기인데 아마 저녁은 다들 드셨을 시간이니 괜찮지 않을까?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귀지 제거이고 다른 하나는 비듬 제거이다.

왜 그 영상을 보기 시작한 것인지는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요새 점점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 늘어만 간다.)

여하튼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자꾸 그리로 데려다 준다.

둘 다 약간은 더러운 무언가를 열심히 제거하여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영상이고

귀지 제거는 이비인후과 의사 버전도 있고 사이비 전문가 영상도 있지만

비듬 제거는 의사 버전은 없다. 아마도 미용 기술을 갖고 있는 분이지 싶다만...

두 영상을 보면 전체적인 결은 비슷하나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영상을 보고 있으면 내 귓속도 머리 두피도 슬슬 간지러워진다는 점이다.


일단 귀지 제거 영상은 한 올의 귀지도 남기지 않고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한겹 한겹 귀지를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높은 과제 집착력을 보여주면서

제거해나가서 마침내는 빨간 피부가 드러나기도 한다.

몹시 따갑고 아플 것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차피 귀지는 아무리 제거를 완벽하게 하더라도 다시 또 생긴다.

저 정도까지 깨끗이 해도 얼마지나지 않으면 또 생긴다.

한때 남편의 귀지 제거에 진심이었던 나로서는 귀지를 파는 사람의 어려움에도 공감하고(잘 안보이고 너무 좁은 통로이다.)

귀지를 파게 귀를 내어주는 사람의 어려움에도 공감한다.(무서움에 자꾸 움찔거리게 된다.)

귀지를 저렇게 열심히 파다가는 잘못하면 염증이 생길수도 있겠다만.


그와는 조금은 다르게 비듬 제거 영상은 아직도 내가 보기에는 비듬이 많이 남았는데 중간에 끊는 느낌이다.

내일 계속하는 매일 연속극도 아니고 왜

다 처리하지 않는 것일까 안타깝기도 하다.

그 비듬을 제거하는 기구는 참빗이다.

나의 어린 시절 머릿속에 돌아다니던 이를 잡아주던 엄마의 애용품이다.

그 시대에는 머릿속 이가 여기저기서 옮겨다녔었다.

각 집마다 하나씩은 다 참빗이 있었을 것이다.

그 참빗이 이제 박물관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른 나라의(어느 나라인지는 모르겠다만) 유튜브 영상에 등장하다니.

그 참빗으로 저녁마다 머리를 박박 열번 쯤 빗어준 후

빨래비누로 머리를 박박 감겨주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세수비누는 약하다면서 빨래비누로 감는 것이

당시 국룰이었다.

손때가 몹시도 매웠던 엄마였는데 나는 왜 손아귀의 힘이 그리 약한 것이냐? 닮았으면 좋았을텐데.


비듬은 남편과 아들 녀석이 가지고 있다.

둘 다 지독한 지루성 피부인데(아니다 건성피부인가?)

그렇게도 끊이지 않고 비듬이 있다. 물론 소량이기는 하다만...

그들의 양복 윗도리에 내려앉은 비듬을 보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머리를 자주 안감는 것도 아니고 너무도 박박 감는데 말이다.

그것도 물론 유전이다.

그래서인지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고 원형 탈모도 심하고 결국은 대머리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남편을 보면 그렇다. 물론 시아버님이 그러셨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제거하고 약도 바르고 해도 비듬이 다시 생긴다.

불치병인 셈이다. 더 심해지고 조금은 약해지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고양이에게도 비듬과 귀지가 있을까?

귀지는 있을듯 하다만

비듬도 있으려나?

그렇지만 귀지제거를 시도해보지는 않으련다.

과한것이 부족한것보다 위험한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데 오늘 저녁부터 갑자기 유튜브를 보는데 광고가 포함되어 나오고 있었다. 이상하다.

아들 녀석에게 물어보니 이제 프리미엄 계정 사용 약정 기간이 끝났다고 한다.

유튜브를 끊어야 하나? 광고가 너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

남들은 유튜브를 보면서 요리도 배우고 생활의 지혜도 쌓고 나홀로 운동도 하고

심지어 교양 과학 내용도 익힌다고 하던데(내 친구 이야기이다.)

나는 겨우 비듬이나 귀지 제거 영상이나 보고 있다니 한심하다.

유튜브가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일뿐.

아니다. 내 최애 프로그램 <불꽃야구>가 유튜브에서만 제공되고 있다. 현재로는...

프리미엄을 유지해야할까를 고민해야겠구나.


(이제 두통이 멈췄다. 다행이다. 멈춘 것인지 진통제의 힘으로 내가 못느끼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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