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할 일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백만배는 더 좋다.
평소에 1일 3건쯤은 거뜬하게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곤 했었다.
요거하고 이거하고 저거 마무리하는 그런 바쁜 삶을 즐겨라했다.
나의 일머리와 능력에 기뻐하고 나에게 이런 일이 몰려오다니 마냥 신났으며
시간과 일정을 연예인처럼 나누어 쓰는 하루에
뿌듯한 그런 일상을 보내는 것을
다소 힘들었으나 엄청 즐겼다.
공노비라는 말에(이제는 공무원노비는 아니다.)
1/3은 질색했고 1/3은 인정했으며 1/3은 기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이제는 일주일에 한건 정도의 일만 하고
하루에 한건 정도의 일 뿐인데도 힘에 부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늙어서일까?
어제는 오랫만에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날이었다.
일단 나의 최애 <불꽃야구> 프로그램 방영일이었고 비공개로는 경기를 하는 날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멋진 후배들과의 맛남과 수다와 컨설팅이다.
나의 이전 스타일이라면 야구를 보러 갔다가
컨설팅을 가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만
(계획이 딱딱 맞아떨어질때의 쾌감이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무리라는 결론이었다.
일단 출장을 다녀온 아들 녀석이 차를 가지고 운동을 간다한다.(새 차를 신청해두었는데 대기중이다.)
검색에 검색을 해보아도 야구 경기를 하는 장소가
대중 교통을 활용해서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목동에 살 때에는 수원 쪽보다 인천 방면이 가까웠는데 지금은 수원 쪽이 인천 방면보다 훨씬 가깝다.
안타깝지만 포기하고 마음속으로만 응원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오전에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국제학교 근무하는 후배에게 의미 있는 도움도 주고
이제 시작되는 공동연구 시작인 이력서 제출도 하고 토요일 영재원 특강 자료도 완비했으니 괜찮았다.)
오목교역에서 택시를 타고 컨설팅 학교로 가는 길목에서
대문 사진속의 요즈음 핫한 프로야구구단빵을 먹으면서(배가 너무 고팠다. 내가 좋아라하는 선수의 띠부실이 나오지는 않았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갔다.
첫 번째, 왜 학교는 큰 길에서 한참 들어가서 주로 있는 것이냐? 요즈음 새로 만들어진 학교말고는 다 그렇다. 찾아가기가 너무 힘들다. 꼬불꼬불 들어가서 있거나 아니면 오르막길의 끝에 쯤 위치한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일수록 더 그렇다. 토지비용의 문제일지는 모르겠다만.
두 번째. 추억의 장소를 지나가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택시를 타고 아무리 재빨리 지나가더라도 순간순간 중요한 것들은 눈에 밟혀 지나간다.
마지막에서 세 번째로 6년간 근무했던 학교도 지나갔고
(그곳에서 나의 교직 진로를 결정하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계셨던 요양병원도 지나갔고
(돌아가셨던 날이 마지막 방문이었다.)
찌그러진 양푼에 주는 생태탕이 맛났던 식당도 지나갔다.
(지난 주말 맛없던 동태탕을 먹으면서 자동으로 생각이 났었는데 지나가다니.)
그리고 컨설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주기적으로 방문하거나
입원시 간호를 하느라 자주 찾았던 보라매역을 참으로 오랜만에 지났다.
정말로 추억이 방울방울 떠올랐다.
그리고는 보라매역에서부터 유튜브로 공개되는 <불꽃야구> 3번째 에피소드를 보면서 집에 돌아왔다.
어제는 27만명 이상이 동시 접속하여 프로그램을 즐겼고(다행이다. 멋지다. )
첫 번째 공식 경기를 구경갔던 나는(지인 찬스인데 감사할 따름이다.)
응원단을 훓어주는 화면 한 구석에 살짝 지나갔다.
<나, 영상에 출연한 사람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꼼꼼하게 살펴봐야만 찾을 수 있지만 말이다.
아참 이제 생각해보니 과거에 TV 출연은 몇 번 했었다.
다음 기회에 적어보겠다.
어제 공식적인 일은 즐거웠던 컨설팅 단 하나였는데
<불꽃야구> 본방 시청에 댓글까지 몽땅 읽고 자서 그런지 꽤 피곤하다.
이제 하루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멋지게 딱딱 맞춰서 처리하는 그때의 나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한 가지 일이라도 깔끔하게 처리하는
그런 날들이라도 되기를 기대해야겠다.
점점 기대수준을 낮춰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