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도 글도 의미와 울림은 같다.
아들 녀석이 회사 창립기념일이라고 오늘 쉰다한다.
그런데 그 금쪽같은 쉬는 날 반나절을 엄마에게 할애해주겠다고 한다.
그 녀석이 볼때도 나의 멘탈이 오락가락해보이는가 보다 싶다.
누구에게도 약해보이거나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주말에 만난 오래된 대학동창 친구도 너무 말랐다고 걱정하며 추어탕을 사주었고
막내 동생은 내 마음을 이해하는 듯 제주를 함께 가주겠다고 하고
고양이 설이도 내 반경 1M 이내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돌아다니며
아들 녀석은 오늘까지인 미술 전시회 티켓을 가지고 와서 함께 가자고 한다.
이래서 기력이 없어 보이는 것도 괜찮은 것이구나.
계속 의기양양 에너지 만빵의 상태로만 지금껏 살았던 인생을 조금은 후회하고 있다.
여의도의 큰 백화점은 작년 사랑하는 최애야구팀의 궂즈를 사러 방문하고는 처음이다.
내 60평생 팝업 스토어에서 궂즈를 사는 것도 처음이었고(야구부 학생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야구 유니폼을 사고 마킹을 한 일도 처음이었고
(이제는 쓸 수 없는 유니폼이 되어서 안타깝기만 하지만 새로 나오면 또 구입할 의사는 있다.)
나의 찐팬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월요일 오전인데도 전시 마지막 날이어서인지
잘 알려진 인상파 모네의 전시여서인지
사람이 이렇게 많은 전시회는 또 처음이었다.
인상파에 대한 안내 문구를 읽어보니
미술 시간에 배웠던 인상파에 대한 암기 내용이 슬쩍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인상파라고 이름이 붙어진 이유가
기존의 혼합된 색조와 정교한 붓질을 거부하고 즉흥적이고 생생한 표현을 추구한 전시회를 보고
기존 작가가 <단지, 인상에 불과하다.> 라고 꼬집은 것에 기인했다는 점이
오늘 전시 중 제일 내 눈을 끌었던 내용이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은 처음보기에는 이상할 따름이다.
나는 앞서가는 일을 많이 했던 사람이었고(논문이나 업무쪽에서만)
따라서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림 전시회에 가서 그림 말고 글에 신경이 쓰이는 것도 처음이다.
사실 그림을 보는 일은 좋아라하지만
(그림을 포함한 다양한 전시 보는 것을 모두 좋아한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아는 것은 절대 아니고
그냥 느낌을 중요시하는 스타일이다.
감히 모네의 그림을 무엇이라 평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모네뿐 아니라 오늘 인상파들의 그림을 보고
놀라운 점은 그림 속에 금색, 은색 가루가 많이 섞였다는 점이다.
그것은 판화나 사진으로 보았을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었다만
모든 그림에 반짝거리는 금색, 은색 가루들이 다소 많이 들어있어서 빛과 함께 만나면 다른 분위기를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림보다 노란색으로 번쩍이는 액자틀이
더 눈에 띄어서
주인공과 엑스트라가 바뀐 느낌(?)이 들기도 했고
역시 나는 그림도 사이즈가 너무 큰 것은 구경하는 것도 버겁다는 것을 느끼는 전시였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그린 그림들보다는
항구나 그랜드케니언이나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보고 그린 그림들이 더욱 마음에 든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데 그림을 보고 그 뒤로도 계속 눈에 밟히는 것은 안내 문구 속의 글귀들이었다.
<인생은 매우 짧지만 나는 네 번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 내가 추구하고 있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 네 번은 너무 많다. 갓생살이 힘들다.
<저는 어떤 사람들에게 예술적 감각으로 감동을 주었고 그들은 사랑과 삶을 느꼈습니다. 예술가로서 그 기쁨에 비견할 만한 것이 또 있나요?> : 나는 학생들에게 과학을 아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림은 삶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다.> : 글도 못지않게 삶을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그림에 대한 설명이지만 나는 내 식대로 해석 버전을 달아보았고 이 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러갔었는데 글만 보고 온 것 같은 기분이지만 사실 글이나 그림이나 추구하는 바는 모두 같은 거 아닐까? 마음의 평안과 위로이다.
전시장에는 아들 녀석과 같이 들어갔지만
전시를 보는 속도와 취향은 달라서 구경은 각자했고
점심은 같이 먹었고(오래전 함께 먹었던 식당의 깍두기볶음밥이 입점되어 먹었는데 그 맛은 아니었다.)
아들 녀석은 이제 독립한 주거형 오피스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황금같은 휴가의 일부를 나와 함께 해주어서 고맙다.
여자친구 생기기 전까지만의 시한부 효도를 기꺼이 누려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