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을 포기한 구체적인 이유 세번째

어디든 더러운 일은 존재한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교직에서의 승진은 장학사로의 전직을 제외하면

현장에 있다가 높은 점수를 쌓아서 교감이 되는 방법이 유일하다.

물론 공립학교일 경우이다. 승진을 위한 점수를 받는 방법은 다양하다.

각종 연수 이수 및 연구대회 입상 점수나 학위 취득 점수가 있고(이것은 그래도 본인의 노력으로 가능하다.)

학생 지도 점수도 있었다.(지금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모르겠다. 불합리한 점이 있다고 계속 지적되긴 했었다.)

다양한 대회에 지도교사로 나가고 학생이 우수한 성적을 받는 경우에 해당하는데 주로 운동부 지도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다른 교과에 비해서 체육 선생님들이 엄청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체육 선생님들은 아니라고 하실 수 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점수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근무평정 점수이다.

학생들이 주는 교원능력평가 점수가 아니고

동료 교사들의 평가와 교장, 교감의 평가가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물론 옛날보다는 훨씬 그 비율도 줄었고 평가 기준 틀이 세분화되어가기는 한다만...

과거에는 교장 전성시대였음에 틀림없다.

동료평가는 생긴지 얼마되지 않았다.

교감 선생님은 악역을 대신하셨고(지금도 교감 자리가 가장 힘든 자리임에 틀림없다.)

동료들은 중요한 순간에는 라이벌이 되는 시스템이다.

물론 대기업의 승진 체계보다 더 살벌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만...


승진을 해야지 하고 본격적으로 마음먹지도 않았으며

관리자들에게 잘 보여야지라는 생각도 없었으며

나는 그냥 나의 길을 묵묵히 뚜벅뚜벅 나가고 있었는데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저절로 승진하는 시스템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순진하게 살았다.)

나이가 들게 되니 저절로 부장교사를 하게 되고

다양하고 많은 양의 일을 맡게 되었다.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인데 싫다고 안하겠다고 버티는 일을 못한다. 밀당을 지독하게 싫어한다.

암묵적으로 근무성적평가에서 1등을 받아야 최고 점수를 부여받게 되고

3년 정도 그 1등 점수를 받아야만 교감 승진 대상자가 될 확률이 놓아지는 시스템이었는데

대부분 그 1등은 가장 어렵고 많은 일을 처리하는 교무부장이 받는 것이 국룰이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학교는 그렇다.

그 국룰을 깨게 되면 이상한 소문이 나게 되고

학교 분위기가 나빠지게 된다.


교무부장을 앞두고 있었다.

연구부장에 방과후부장까지 함께하면서

엉망이었던 일을 정비하고(문서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주먹구구식이었던 일을 자동화하고(엑셀 프로그램을 쓰면 된다.)

갑자기 휴무일이 된 토요일에 나만 출근해서 방과후프로그램을 관리 운영하고

(초과근무를 왜 안썼던거냐? 아무도 안알려줬다.)

그렇게 누가봐도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승진을 위해서 억지로 일을 하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3년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난 후였는데도 말이다.

기존에 있던 교무부장이 전출을 가고나면

내가 교무부장을 하고

그러면 3년동안 최고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교감 승진이 가능할 것이라는 청사진이 보였었다.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었다.


그런데 내가 우습게 보였던 것 같다.

만만한 사람 대상으로는 여기저기 찔러보거나

다른 꼼수를 도모하게 되어 있더라.

아무것도 안하고 심지어 수업도 대강대강하는 발령동기 모 교사가(물론 교장이랑 술과 담배 멤버이다.)

교무부장을 탐낸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약속이 술자리에서 다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데 일은 하나도 모르니(아니 하고 싶지도 않고

할 마음도 없고 할 능력도 안되니)

중요한 일은 여전히 내가 해야 될 것이라 한다.

카더라 통신으로 오가는 말들이 내 신경을 건드리고

일하는 것이 더 이상 신나지 않게 된다.

학교에 출근하는 일이 기대되지 않는다.

웃는 얼굴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다.

그 무리들을 보는것조차 기분이 나빴다.

아니다. 꼭 교감 승진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약 한달 정도의 어지러운 시간을 보내고

나는 이 더러운 승진의 세계에 발을 담그지 않기로 한다.

결정적인 이야기나 대화나 명령이 있었던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쿨하게 나는 그들과의 전쟁을 하지않고 특별학습연구년을 신청하고 그 학교를 떠났다.

그 이후에 들리는 깨끗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은 적지 않겠다. 기록할 가치도 없는 일들이다.

특별학습연구년으로 좋은 동료들을 만나서

다친 마음과 지친 몸을 수양하였고

디지털기기와 빅데이터 활용 관련 새로운 역량을 착장했으며

그 이후 대한민국1호 미래학교로 옮겨서

멋진 일과 후배 동료들과 학생들을 만나서 교직 인생 최고의 순간을 보냈고

이후로도 정년퇴직때까지 즐겁고 의미있는 과학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승진이라는 결과보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키는 과정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학생들과 지지고 볶고 수업하는 그 시간이

백배는 더 소중했던것 같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어제 오후 오랜만에 4시간의 영재원에서의 멋진 강의를 진행한 나 자신을 칭찬한다.

나만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겠지?

아그들이 덥다고 에어컨을 틀어서

나는 서늘해서 자기 전 전기장판을 잠깐 틀었었는데

아무튼 콧물과 함께 시작하는 일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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