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과 수다의 즐거움
한달 반 정도만에(그 이상은 버티지 못한다. 흰머리의 전성기가 된다.)
염색을 하는 날은 핫플인 홍대입구에 가는 날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에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친구를 만나는 날이다.
그리고는 함께 머리를 하고 점심을 먹고 간단한 산책을 하는 것이 암묵적인 루틴이 되었다.
한번은 합정역쪽으로 한번은 연희동쪽으로 또 하루는 연남동쪽으로
그리고 그 산책의 시작과 끝에는 끝나지 않는 수다가 함께 한다.
머리를 해주시는 원장님도 연배가 비슷하여 머리를 하면서도 옛날 이야기가 술술술 이어진다.
어제도 그랬다.
친구는 고민 끝에 염색을 하지 않은지 꽤 되어서 보기좋은 흰색과 검정색의 조화로운 머리가 되었다.
아마 나도 곧 그 길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덜 추레해보이는 머리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흰머리로 가는 방법이 우리의 공통 관심사이다.
다양한 염색 방법에 대한 논의가 어제의 첫 번째 수다 과제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다소 늙은이들의 대화는 맥락이 부족하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가 이어진다.
초등학교 시절의 지금은 있을 수도 없는 우리만 아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시작은 벌레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친구가 집집을 방문하여 소독을 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그 이야기를 하다가
바퀴벌레 이야기로 갔다가 아이들이 벌레를 몹시 무서워한다는 이야기로 갔다가
점점 세계관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때 송충이를 잡으로 단체로 산에 갔던 이야기이며(나무젓가락으로 나무에 붙어있는 송충이를 떼내어 제출해야했다. 개인당 10마리씩 할당이 되어 있었다. 징그럽고 무서웠지만 참았다.)
쥐잡기 운동으로 쥐를 잡아서 꼬리를 잘라서 학교에 냈던 이야기이며(다행이 엄마가 쥐잡기에 진심이셨다.
다양한 방법으로 쥐를 잡고 죽이고 꼬리를 잘라 주셨었다. 제출할 쥐꼬리가 없는 날 아이들은 오징어 다리를 말려서 흙에 문질 문질하여 제출하기도 했는데 노련한 선생님의 눈을 속이기는 어려웠다.)
혼밥 장려 시대를 맞아 도시락을 매일 검사받았는데 도시락 위쪽에 보리를 깔아두거나 콩을 올려두는 다양한 기법이 사용되었다.
세상에나 원장님은 학교가다 콩밭에서 콩을 따서는 도시락 밥위에 올려두어 검사를 통과했다하는데 그
날 콩의 비린내를 참고 먹느라 엄청 고생했다고 했다.
나는 그런 방법까지는 써보지 않았다. 친구에게 보리 몇 알을 빌리기는 해봤다만.
머리를 마치고 입맛을 돋우기 위한 매운 것을 먹어보기로 하고 낙곱새를 먹었고
(아직 입맛 완전 회복까지는 갈 길이 멀다.)
공덕역까지의 경의선 숲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다만...
연남동쪽 숲길이 한가롭고 햇빛 잘드는 여유로운 길이었다면
반대편인 공덕역쪽으로의 숲길은 커다란 나무 숲길이라 적당히 해가 가려져서 묘한 분위기가 난다.
꽤 먼 거리이지만 이것 저것 수다와 함께하고
중간에 한번쯤은 거리 옆 벤치에 앉아서 물을 먹고 쉬다가
또 걷고 수다떨고 하는 그 길이 15,000보 이상이 되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반대쪽에서 초등학교 동창으로 보이는 친구 다섯명이 함께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물론 우리와 비슷한 연배이다.
<왜 저렇게 한 줄로 나란히 갈까? 다른 사람 길을 막는데...>
<아마도 초등학교때 저렇게 다녔던 기억이 나서 그런 것 아닐까?>
<그 때는 왜 그렇게 나란히 서서 걸었던걸까? 길도 좁았는데...>
<그것이 친구이고 동질성이라고 생각했겠지. 마치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말야.
뭐든지 함께 똑같이 해야한다고 통일성있게 행동하는 것이 바른 것이라고 배웠을 때잖아.>
<늙은이들이 저러고 다니는 거 안이뻐. 말소리도 크게 내고>
<크게 말 안하면 안들려서지. 점점 목소리가 커지잖아. 우리도>
<어린아이들이 저렇게 나란히 손붙잡고 다니고 조잘대면 이쁠텐데>
<물론이지. 어린아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도 이쁘지.>
<우리 나이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도 안 이쁘지.>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크크하고 웃었다.
오늘은 주변 산책보다 수다가 더 중심이 되었다만
경의선 숲길 근처의 조금 남은 아카시아들의 냄새와
만개한 다양한 색깔의 장미는 여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주변에 디자인도 아이디어도 멋져보이는 맛집과 카페들이 너무 많았다.
점심보다는 저녁에 더 멋져보일 것 같긴 했다만...
가을에 한번 더 걸어보기로 그리고 그때는 수다보다도 주변 구경에 몰입해보기로 한다.
다시 올 이유를 남겨놓는 것이 우리들 산책과 수다와 암묵적인 또하나의 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