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깔끔하기는 쉽지 않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옛 동료들과 양평 나들이로 가기로 한 날이다.

양평쪽을 나들이로 나선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강서쪽에서 살때는 너무 멀어서(이곳까지 오다가 막혀서 이미 지친다.)

서울 중심부에 살때는 딱히 이 곳을 갈 일이 없어서(주로 차마시러 와야하는데 바빴다.)

그리고 이제 가까운 쪽으로 이사오고 시간의 여유가 생겼는데

혼자 방문하기는 조금 어색한 곳들이어서 못왔었는데

오늘은 딱 방문 조건을 맞춘 날이었다.

계획은 완벽했다.


먼저 2년만에 한국여자프로골프 경기 구경 갤러리를 하기로 했다.

작년에는 왜 안갔었는지도 기억 나지 않는다.

1년에 한번쯤은 다녔었는데 말이다.

회원제 골프장이라 방문도 힘든데다가 멋지다는 소문을 들었던 골프장에서 시합이 열리니

눈으로 구경이라도 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마침 동행하는 골프 입문 골린이들께서 좋다고 한다.

오랜만이었지만 그 사이 꾸준하게 늘어난 골프 갤러리에 대해 놀라고

생각보다 갤러리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하는 골프장의 위치에 놀라고

6월이 되면서 초록초록해진 산과 식물들에게 많이 놀라고

양평이 생각보다 산이 이리 높았었나 새삼 놀라고

이제는 여름이구나 싶게 더워서 반팔과 반바지 생각이 저절로 나게 되는 날씨에 놀랐다.

같이 간 초보 갤러리들이 골프장의 디자인에 놀라면서 계속 걸어다녀보자해서

산속으로 난 9홀을 걸어다녔더니

다리는 조금씩 무거워지지만

기분은 상쾌함의 극치이다.

게다가 선수들의 멋진 샷을 보았더니 내가 공을 잘 친 것은 아니지만 기분은 좋아졌다.

그래도 내가 이 멋진 곳에서 공을 치는 상상이

더 즐거운 일임에는 틀림없다만...


9홀을 돌고 나니 체력의 한계치가 온다.

근처 오래된 냉면 맛집에 들러보기로 한다.

아들 녀석 어렸을 때 사촌들과 함께 한화리조트에서 눈썰매를 탔던 날 아마 들렀던 것 같고

뭔지 기억은 안나지만 시험 문제 출제로 며칠 감금되어 있다가 풀려난 날 단체로 이곳 냉면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둘다 거의 20년 전 일이다.

그 때의 맛이 생각날리는 전혀 없다만 조금 기대는 된다. 워낙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이 조금 지나서 갔음에도 15분 정도는 땡볕에 줄서서 대기를 해야했다.

그리고는 우연히 바로 앞에 줄을 선 비슷한 연배의 부부와 맛집 리스트 말하기 미션을 수행하게 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곳곳의 냉면집, 곰탕집, 설렁탕집, 갈치조림집, 대구탕집들을 이야기하고

서로 맞장구치느라 대기 시간이 마냥 길고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뒤에 서있던 젊은이들이 귀를 기울여 듣는 것도 같았는데...

며칠전 평양냉면보다는 양념과 다시다 맛의 최고봉인 냉면이었지만

오전의 산책(등산에 가까웠다.) 후에 먹는 비빔냉면은 먹을만했다.

특히 빈대떡과 완자를 얻어먹으면 딱이었다.

이제는 이 맛을 당분간은 기억할 것이다.

평양냉면보다는 훨씬 친숙한 맛이다.


근처에 디저트로 멋진 한옥 형태의 베이커리 카페도 방문한다.

식사도 베이커리도 음료수도 빙수까지 하는

토탈 공간이면서

한옥의 디자인을 살려서 바닥은 시원하고

손을 찔러 빵구내고 싶은 한지 창문도

구석 구석 키작은 꽃들까지 정겹기만하다.

다들 누워서 한잠 자고 싶은데(방바닥이 시원하니 딱 좋더라. 구옥에서 잠이 더 잘 오는 것일까?)

올해 두 번째 팥빙수를 먹고(우리 동네 팥빙수 맛집 것이 더 맛있는 게 확실하다.)

인절미 속에 생크림을 넣은 시그니처 빵도 한입씩 먹고(배불러서 남은 것은 포장해왔다.)

깔끔한 아이스커피도 한 입씩 나눠먹은 후

이른 귀갓길에 오른다.

동행 두명은 현직이다.

남은 시간 휴식해야 또 다음 주 한 주간을 열일하면서 보낼 것이다.

일행 중 한명은 하남 스타필드에서 가족과의 접선을 하러 내리고

나는 하남검단산역에서 내려서 집에 돌아왔다.

한번 와봤다고 하남검단산역이 낯설지않다.


<완벽한 주말이었다.> 라고 생각하고 뿌듯하게 집에 들어왔으나 집에 들어오고서야 알았다.

아뿔싸 오늘 하루종일 햇빛을 막아준 고마운 모자가 없다.

어디에 두고 왔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옥 카페이다. (기억이 났으니 다행이다.)

전화를 하니 맡아놓겠다고 한다. 할 수 없다.

선거날 일찍 선거를 하고 핑계김에 아들이랑 남편이랑 재방문해야겠다.

냉면을 다시 먹을지 아니면

한옥카페에서 국밥을 먹을지는

두 명의 의사에 따르면 된다.

뭐가 마지막까지 깔끔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완벽이란 그래서 힘든 것이고 추구를 위해 노력할 뿐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매사 완벽하지는 않아도 된다.

많이 너그러워진 나를 만난다.

나의 실수에만 너그러워지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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