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 때문이었으면 참 좋겠다.
어린 아기가 잠자는 모습처럼 이쁘고 평화로운 모습은 없다.
자기자식은 이쁘지 않을때가 없다만 잘때가 가장 이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고양아 설이가 잠자는 모습은 아름답고 하루 종일 바라만 보고싶다.
물론 너무 이뻐서 얼굴을 살짝 한번 만져주면 곧장 뾰루퉁하게 눈을 뜨기는 한다만...
(대문 사진은 우리집 고양이 설이가 아니다. 우리집 설이의 미모는 더욱 뛰어나다.
며칠 전 방문한 모자를 두고 온 한옥 베이커리 카페 출입구에서 평온하게 잠을 자던 고양이 사진이다.
사진을 찍어도 조금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렇듯 이쁘고 평화롭기만했던 잠자는 모습이
언제부터인지 누구에서부터인지 처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 생애 가까운 사람이 심하게 아픈 것을 보기 시작한 것은 10여년전이었다.
독신이시라 우리 형제들 근처에서 거주하고 일상을 함께 하셨던 외삼촌부터였다.
당뇨에 다양한 질병을 가지고 계셨던 외삼촌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가 간신히 회복되었다가
다시 김밥을 드시다가 기침과 함께 기도 폐색이 일어나서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오랜 투병생활길로 들어서게 되셨다.
그때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뵈었던 기력 하나도 없이 잠든 외삼촌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인생의 고난과 회복이 어려운 질환의 무서움을 느꼈다.
그 때 느꼈던 세월의 무게감과 삶과 죽음 사이 갈림길에서의 잠자는 모습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있었다.
그 뒤로 치매이자 파킨슨병이셨던 어머니를 뵈러갈 때 보았던 입벌리고 정신없이 주무시던 그 모습과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 서슬이 퍼렇던 기세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채
정신없이 주무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볼때면
안타깝기도 하고 무섭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늘같던 두 분이 이렇게 무너지다니
가끔 나는 잠을 주무시는 것인지
하늘나라로 가신것인지 무서워서
귀를 대어 숨소리를 들어보곤 했었다.
얼마전 시어머님께서 양로원으로 들어가시기전
물건 정리차 집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집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적은 처음이었는데 거실에 이불을 깔고 주무시고 계셨다.
그렇게 꼬장꼬장하던 시어머님이 그곳에서
예전의 외삼촌, 어머니, 아버지가 주무시던 것처럼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잠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조심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시어머님과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오늘 양로원에서 뵙고 온 어머님은 그 날과는 다르게 명료하고 기분이 좋아보이셔서 다행이었다만...
어제 항암주사를 맞고 온 남편은 착한 아들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오늘 힘든 몸을 이끌고 양로원에 어머님을 뵈러 가자한다.
그 마음을 알기에 기꺼이 운전을 자처하고
나들이 겸 양로원에 다녀왔다.
집에 누워만 있으면 기분도 몸도 더 처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싼 수박을 한 통 사서 양로원 직원들게 어머님을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의 말도 남기고
시어머님의 비슷 비슷한 레퍼토리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드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남편은 한 숟가락 남짓 점심을 억지로 먹고는 누워 자고 있다.
그 남편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하다.
이제 누가봐도 투병중임을 알 수 있을 듯 하다.
독한 항암약 때문에 간 기능이 버티지 못해서 생긴 복수로 마른 체형에 배만 볼록 나와있다.
얼마나 힘들고 무서울까?
갑상선암을 견뎌낸 나로서도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나도 남편도 가급적 질병 이야기보다
좋았던 옛날 이야기만 하면서 지낸다.
무덤덤하게 일상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만
남편의 자는 모습이 평온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내 노안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