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음식이 생각난다는 것은 기운이 없다는 뜻이다.
내 마음속으로 이제 완전히 여름이 되었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시장을 돌다가 호박잎이 눈에 번쩍 뜨일때와
지나가는 길가에서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물론 올해는 이번 주말과 월요일 야외 활동에서
뜨거운 햇빛을 제대로 느꼈었고
선크림을 안 바른 곳이 빨갛게 타올랐고
이미 팥빙수와 아이스크림도 한번씩 먹었었고
오늘 점심 에어컨을 자발적으로 틀었으니
여름 한 복판에 입문한 것이 틀림없다.
어제 아침에는 모닝 제육볶음덮밥을 먹고는
점심은 마땅히 먹을 곳도 없고 해서 건너 띄고
(회의 시간이 애매하고 배가 불렀었다.)
저녁은 또 딱히 먹고 싶지도 않길래 시리얼로 때웠다.
이러다가는 또 입맛을 잃어버리겠다 싶어서
오늘 아침에는 낫또와 간장에 졸인 명란 넣어서
김에 싸서 우격다짐으로 먹기는 했는데
헛배만 부르고 입맛이 도는 것 같지는 않더니
점심은 또 별 생각이 없다.
어르신들이 힘들어하는 계절이 여름이라는 것에 백번 동감한다.
그런데 마침 어정쩡한 독립을 한 아들 녀석이 반찬을 가지러 집에 잠깐 들르겠다고 한다.
타의에 의한 것인기는 하나 음식을 해야하는 계기가 된다.
매일을 자발적으로 나 혼자 먹기 위한 음식 준비를 하기란 쉽지 않다.
부지런히 호박쌈을 찌고 강된장을 졸이고
아들 녀석 좋아라하는 베이컨과 소시지를 굽고 유부초밥을 만들고
양파와 대파 넣어서 콩나물과 제육을 볶아두었다.
금요일에는 남편이 오니 그때는 남편 맞춤형 음식을 준비하면 되고
오늘은 완전 아들 맞춤형 음식을 했다.
가정주부의 삶이란 이렇게 다른 가족을 먹이기 위해서 음식을 하는 것인가 싶다.
우리 엄마도 그러셨었겠지?
오늘 아침 일찍 막내 동생은 어젯밤에
머리에 피를 칠칠 흘리면서 다치는 꿈을 꾸었다고 톡을 보냈다.
엄청 다친 자기를 보고 엄마는 쌀쌀맞게 화를 냈다고
걱정하고 다친 나를 안심시켜야하는데
엄마는 왜 꿈에서도 그러는 거냐고.
아플때면 더 쌀쌀해졌다고.
나는 답을 보냈다.
우리 엄마는 쌀쌀함이 디폴트였지.
그런데 아이가 네 명이나 되었잖아.
다치고 아픈 것도 아이 하나인 우리의 네 배였을거잖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아파서 다쳐서 속상함의 다른 표현 방식이었을 수도 있어.
그랬더니 막내도 그러고 보니 자신도 아픈 아들에게 화냈던 것 같다고
나도 그랬었다고 서로 반성을 하며
엄마를 이제서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고
세상 훈훈한 마무리를 했다.
그렇게 쌀쌀했던 우리 엄마가 왜인지는 모르게
기분이 좋아보이는 어느 여름날이면
따끈하게 호박쌈을 삶아놓고 강된장을 자작자작하게 끓여놓고는 웃으면서 우리를 맞이해주곤 했다.
반찬은 잘익은 열무 물김치나 고구마순 김치였고 고기는 있기도 했지만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식후 디저트는 잘 익은 몰랑몰랑한 복숭아였다.
물론 1인 1 복숭아를 먹을 만큼 많은 양이 내 차지가 되지는 않았지만
푸짐하고 마음에 들었던 한 여름의 한 끼 저녁이었다.
먼 훗날 아들 녀석도 오늘의 메뉴를 보면 나를 기억해주려나.
쌀쌀했던 것이 디폴트인 엄마가 자기에게 음식을 해주는 것에는 진심이었다고 기억해주려나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음식도 유전인셈이다.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
이 세상에 음식 메뉴는 많고 많지만 먹어본 것이 제일 맛나다. 엄마표 음식이 그것이다.
올해 첫 복숭아를 주문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