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아리송한 아르바이트 후기 4편

일처리 방식이 그 기관의 신뢰도를 결정한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나의 최대 희망인 재취업의 기회는 원천 봉쇄되었다고 보는 게 거의 맞다.

가장 큰 원인은 물론 나이이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지는 않다는 그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나도 그때는 그랬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4월 중순 이후부터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물론 그 횟수는 많지 않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인데 그나마 나의 숨통이고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들게 해주며

기분 전환과 새로운 것들에 대한 정보와 역량을 축적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


가장 많이 한 아르바이트는 교육청의 다양한 연구 용역이나 행사 용역 평가 형태인데

비슷비슷한 방법이지만 어떻게 진행되는가의 여부는 천차만별이다.

어제는 그 최대치를 만난 날이었다.

평가위원은 대부분 3일전에는 결정이 난다.

주말이 있으니 5일전쯤에는 연락이 오기 마련이다만

어제의 평가는 하루 전날 연락이 왔다.

아마도 결정되어 있던 위원의 갑작스런 결원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소위말하는 땜빵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어디냐 기꺼이 기분좋게 참여한다.

나는 땜빵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아무도 할 사람이 없는 갑갑한 상태에서 그 일을 맡아주는 것만으로도 담당자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나도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후 안내 및 문자등에서 담당자의 꼼꼼한 일처리 스타일을 알 수는 있었지만

다소 답답하다는 느낌이 살짝 들기는 했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 법이다.


공문상에서 회의 시작 시간은 14시였지만

13시 30분까지 오라고 했다.

관련 서류를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남는게 시간이니 그리고 워낙 일찍 가는 스타일이니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평가위원은 모두 13시 30분에 도착했고 평가해야할 업체는 5곳이나 있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교육청 행사나 연구들은 대부분 예산이 많지 않고 이윤이 많이 남지않아 하겠다는 업체가 2곳 이상이 되기도 쉽지 않다.

한 업체만 신청해서 대부분 적격판정 정도의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일단 조금 당황했다. 오래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점심도 안먹었는데 말이다.

그리고는 13시 40분부터 곧장 평가가 시작되었다.

공문에서 14시인데 시작 시간이 더 일찍이다?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늦어지는 일은 봤지만 일찍 시작하다니...

그런데 어차피 다 일찍 왔으니 불만은 없는 듯도 하다.

나도 물론 어정쩡하게 기다리느니 먼저 시작하는게 낫다.


AI 연수는 작년부터 교사 연수의 대세가 되었다.

교육부에서 내려 준 예산의 대부분이 AI 연수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각 교육지원청마다 다양한 연수를 기획하고 있고(그런데 내용은 비슷비슷한다.)

그 연수를 진행할 대행업체 선정이 진행되고 있다.

예전같았으면 교육지원청에서 업무 담당 장학사가 연수를 진행하곤 했는데

왜 이렇게 대행사를 써야하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어차피 담당 장학사가 강사 인력풀과 다양한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계속 신경을 써야만 한다.

대행 업체를 선정한다고 해서 업무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를 살리자는 것인지 중소기업 활성화가 목표인지는 알 수 없다.

15분씩의 업체 발표가 이어진다.

비슷 비슷한 내용 말고 차별화되는 내용만 요약 발표하는 것이 맞을 듯 하지만 업체별로 확보해주어야 하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는 10분 정도의 질의 응답 시간이 있다.

내가 꼭 끼어들지 않아도 엄청 잘난척 하는 평가위원들이 꼭 있으니 가급적 입을 다물고 있으려 한다만

그 분들은 학교를 교사를 그리고 현재 학교의 디지털 환경과 운영 상황을 너무도 모르는 분들이다.

핀트가 전혀 맞지 않는 질의와 응답이 이어진다.

심지어 교사 대상의 연수인데 학생 대상의 수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모든 평가에는 그 내용을 경험한 평가 위원이

꼭 필요한데 그걸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력이나 경력이나 현업의 지위는 나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나만큼 현 상황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배가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다섯 개 업체의 설명과 질의 응답을 하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배가 고파서 과자도 먹고 물도 한 병 원샷했고

잘난척 대마왕의 이야기도 실컷 듣고(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만)

그래도 서울교육발전을 위해 한몫했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점수 합산 작업을 진행하고 대기하고 있는데

아뿔싸. 서울교육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8명의 평가위원 점수 합산을 한땀 한땀 수기로 옮기고 계산기를 눌러서 확인한다.

꼼꼼한 그 장학사님의 스타일이다. 답답하기 짝이 없다.

얼마전 한번 경험한 사기업에서의 평가 시스템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그 곳에서는 해당 점수에 체크만 하면 자동 합산이 되는 시스템을 구사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그 시스템을 사용하려면 예산이 많이 필요하고

평가 대상자가 많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적어도 엑셀 정도는 써서 자동 합산이라도 하는게 맞는 것 아닐까?

교사들에게는 AI를 운운하면서 그 연수 평가에는 계산기를 쓰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점검까지 시간은 점점 흘러서 나처럼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짜증이 날만하다.

그럴만하다. 도대체 엑셀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그 장학사의 작업 스타일인가? 무엇일까?

그 분부터 AI 연수 듣는 것을 적극 권장하고 싶은 오후였다.

아직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인데

그래도 조금은 구린 시스템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서울교육에 대한 무한한 애정때문이라는 것도

약간 구린 시스템이라도 아르바이트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쁘겠다는 내 마음도 분명히 밝혀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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