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전 아파트 커뮤니티센터 카페의 일상

진즉에 나올걸 그랬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작업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하소연의 브런치 아침 글을 쓰고

작업 환경 변경의 극단의 대책을 세운 후

아파트 커뮤니티센터 카페의 10시 오픈런을 기다리며 아침 시간을 보냈다.

남편용 감자국도 끓였고 버섯도 구웠고

아들용 베이컨과 소시지도 구웠으며(1+1을 샀으니 이번 주에 해결해야만 한다.)

공용인 오징어야채 볶음도 준비해두었고(남편이 매울까 싶어서 콩나물 삶은 것을 아래에 깔아주려한다.)

생선과 전복죽은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위치를 변경해두었다.

청소기를 눌러두고 아침 산책도 마쳤다.

이제는 연꽃도 꽤 피어나고 있었고 새들도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부지런한 아침을 보내고 10시 5분. 커뮤니티센터 카페에 노트북을 들고 입성한다.


와우. 씩씩한 아주머니들로 만원사례이다.

아마도 방금 에어로빅을 하고 난 모임인 것 같다.

목소리도 화통하고 다양한 주제로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다.

무료 커피를 한잔 주문하고 큰 숨을 한번 쉬고 노트북을 편다.

누가 보면 연륜 있는 프린랜서의 재택 근무 형태이다.

그런데 작전 대 성공이다.

집에서는 그렇게 진도가 안나가더니

시범 강의안 초안이 뚝딱 만들어진다.

어제 머릿속으로 정리한 것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물론 이 안으로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수정하고

만든 것은 단지 PPT 일뿐

강의할때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살을 붙여야 마땅하지만

그래도 뼈대를 만들었다는 것은 반을 진행했다는 뜻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믿는다.

대단하다. 외부 환경에 이토록 민감한 사람이라니.

이래서 나는 재택근무에는 맞지 않는 출근형 직장이

꼭 필요한 스타일이다.


한 시간이 지나가니 떠들던 커뮤니티센터의

아주머니 군단이 모두 사라진다.

나를 제외하고는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두 명의 젊은 남자들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두 명의 젊은 엄마들뿐이다.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간 시간이

엄마들의 자유 시간이다.

에어컨도 나와서 적당히 시원하고

오랜만에 마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뱃속은 따스하다.

이렇게 쾌적한 공간에서의 작업이라니.

이렇게 효과만점의 작업 공간이라니.

이제부터 나는 침실에서 거실로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센터로 출근하는 것으로 패턴을 바꾸어야하겠다.

고양이 설이는 다소 아쉬울 수 있겠지만.

고양이에게도 나름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뜨거워진 날씨나 장마철 산책대신

바로 옆에 있는 커뮤니티센터 헬스장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곳에서 러닝도 살살하고 무엇보다도 손의 근육량을 키우는 아령 운동과 상체 운동을 시작해봐야겠다.

물론 나 혼자서 살살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무료 이용이라는 점이 딱 마음에 들지만

내가 물을 흐리게 될까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가 사용하는 시간은 잠시일테니 조금만 너그럽게 참아주기를 바란다.

나도 가급적 물 흐리지 않게 최선을 다해보겠다.


오늘 읽은 내가 존경하는 김성근 감독님의 인터뷰 내용을 옮겨본다.

<나 역시 80대이지만 한번도 나이를 의식해본 적이 없다.

인간이라는게 의욕이 있고 미래를 꿈꾼다면 얼마든지 변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

나이때문에 좌절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다. 나는 나이를 의식하기는 한다만

의욕이 있고 미래를 꿈꾸고 있으니 조금은 변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좌절하기는 이르다.

두 시간 반짝 일을 하고는 집에 와서 맛난 비빔국수를 먹었다.

두 시간 이상은 못있을듯 하다.

에어컨때문에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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