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잊으려지 않아도 저절로 잊혀지기도 한다.
나는 선택적으로 용감함과 겁쟁이 사이에서 왔다갔다한다.
새로운 일을 할 때는 할 수 있다 해보자는 마음이 솟구쳐서 덥썩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데
새로운 음식을 먹거나 특히 가슴 아픈 장소에 가는 일에는 강한 회피 기제가 발동하기도 한다.
일단 피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한다.
일을 할 때 한번 해보자고 호기있게 도전하는 그 마음은 어디로 숨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음식을 먹는 것은 한 입 찬스라도 있지만
(한 입만 먹어보고 퉤퉤하는 것이다.)
가슴 아픈 장소나 모임에 가는 일은 부딪혀서 가서 극복하거나
아니면 그냥 계속 피하거나 둘 중 하나이니
해결 방안이 필요하기는 하다.
얼마 전부터 피하고 싶은 행사는 결혼식이다.
순전히 나의 자격지심에서 출발한 회피 기제이다.
아들 녀석의 결혼이 늦어지니
지인들의 결혼을 축하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부러운 마음이 훨씬 더 크고
그러니 해맑게 축하하는 표정이 될 수 없으며
그곳에서 만나는 지인들과의 대화가 신나고 즐거울 수가 없다.
마냥 축하만 오고가야할 그 시간과 공간이 버겁기 시작한다.
게다가 굳이 핑계를 댄다면 요즈음 결혼식장 식사비가 너무도 비싸다.
혼자 가서 축의금을 내고 밥을 먹고 오면 혼주측에 재정적으로 별 도움이 될까도 싶고
특히 지인이 나 아니어도 엄청 많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결혼식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장문의 축하톡과 함께 축의금을 보내는 형태를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명절날 결혼에 대한 질문을 피하고 싶어서 친척모임에 가는 것이 싫어지는 그 마음과 똑 같은 것이다.
아들 녀석의 결혼식에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손님이 없는 한적한 결혼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직 와닿지 않는다.
6월에 가야할 결혼식이 두 개이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늘이다. 오늘 아침까지도 고민중이다.
축제를 즐기려다가 경사지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져서 많은 사상자가 났던 이태원의 그 장소를 지나갈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차마 그쪽길을 걸어갈 수가 없어서 반대편 길로 걸어가고
그 즈음에서는 일부러 눈길을 돌리곤 했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어서, 믿고싶지 않은 일이어서 반사적으로 눈길이 돌아가는 것이다.
회피하고 그럼으로써 일부러 망각에 다다르고 싶은 기제가 발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이태원에 약속이 있었던 어느날
아깝게 희생된 그 분들에게 정중한 조의를 표하는 것은
그 장소를 지나가면서 오랫동안 기억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의 약속 장소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그리고 엄청 추운 날씨였지만
일부러 그곳을 방문했다.
아직도 그 날을 기억하려는 문구와 표시가 남아있는
그 곳에서
오랫동안 묵념을 하면서 그날을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잊지 않아야 말도 안되는 그럼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회피와 망각의 기제는 본능이다.
힘든 일은 잊어버리는 것이 분명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잊은 것처럼 살 수는 없는 일도 분명있다.
세세한 복기 과정을 통해서 내 마음을 후벼파는 것이
지금은 힘들어도 궁극적인 멘탈 회복과 실수 방지를 구현할 수도 있고
당분간은 회피하고 망각하는 것처럼 지내는 것이 단기간의 멘탈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잊어버리니까 살아간다.>라는 어른들의 말은 아마도
<잊어버린 척하면 살아가는데 약간의 도움이 된다.>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일부러 잊으려 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이 되면
저절로 잊혀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