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월요병을 모르고 살았다만.
가끔씩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빼고는 매일이 휴일인데 주말이 딱히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이상하게도 출근하던 시절에 가지고 있던 주말병은 그대로 유지된다.
내가 파악한 나의 주말병의 가장 근원은 낮잠과 두통이다.
낮잠을 자서 두통이 오는 것인지
두통이 와서 낮잠을 자는 것인지의
선후 관계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오늘은 그 주말병 증상이 올해 들어서 가장 심한 날이다.
아침에 브런치 글을 쓰고
오늘의 결혼식에 갈까말까를 고민했는데
특히 축하 인원이 엄청날 것으로 생각되는 그 자리를 회피하기로 결심을 한다.
회피 기제에 사람이 너무 많은 곳도 포함된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곳에 가면 점점 힘들더라.
그리고 아침부터 별로인 컨디션도 결정에 한 몫했다.
결정을 하고는 재빨리 양해 문자톡과 축의금을 보냈다.
내가 아니어도 오늘의 축제는 사람도 많고 멋지고 즐거울 것이다만
남편과 아들의 식사를 챙기는 일이 조금은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다음 주 중요한 시범강의도 있고 제주 여행도 있어서 컨디션을 챙기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정을 내리고 나서부터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늘상 함께 했던 두통인데
오늘은 오랜만에 그 정도가 심하다.
마치 강진을 예고하는 흔들림이다.
일단 단 것을 투여해본다.
내 오랜 경험에 비추어보면 두통에 단 것이 약간 효과가 있는 듯도 하다.
순전히 내 개인 생각이다.
어제 영재원 특강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상품으로 주고자 샀던 2+1 몽쉘을 먹어본다.
생전 안 먹던 것인데 요새 내 최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보고는 덥썩 샀다.
이렇게라도 그 프로그램에 힘을 주고 싶다는
나의 소소한 덕질의 끝이다.
먹어보니 많이 달기는 하지만 맛이 있다.
별다른 차도가 생기지 않아 두 번째 비법을 활용해보기로 한다. 산책이다.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산책을 하면 두통이 줄어드는 믿을만한 데이터가 있다.
그런데 나가보니 좋은 공기가 아니라 더운 바람이 훅 들어온다.
그래도 길을 나선 김에 새로 생긴 몰도 구경하고(쇼핑몰인지 후드몰인지의 구분은 분명치 않다만)
아들 녀석이 먹고 싶다는 쌀국수도 먹고
여름 옷 구경도 하고 왔는데
돌아오니 배는 부른데 두통은 더 심해졌다.
역효과라는 것이 항상 있는 법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낮잠을 자본다.
이 방법도 통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싶다만
자면서도 두통이 느껴진다.
안되겠다. 진통제를 투여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내가 이상한 듯
고양이 설이가 내 반경 1M 이내에서 나의 움직임만 주시하고 있다.
뇌졸중이셨던 아버지와
파킨슨이었던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뇌경색이었던 외삼촌
나는 과도한 두통에 대한 공포심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 공포가 항상 주말이면 특히 강하게 떠오르곤 했었다.
괜찮다. 오늘도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별일 없이 지나갈 것이다.
예전에는 주말에 아파도 월요일에 출근하면서 나아졌었는데
(나에겐 월요병이란 없다. 기쁜 월요일만 있었을 뿐.)
이제는 월요일 출근이 아니니 그런 루틴과 회복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내일 올해 첫 공개수업을 볼 수 있는 기회와
외국 연구자들과의 연구 교류가 예정되어 있다.
출근이나 똑같다. 나아져야만 한다. 나아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두통 조금으로도 힘든데
암과의 투쟁 중인 남편은 어떻겠나?
묵묵히 참고 있는 남편이 안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