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그리 멀지 않다.
조금 힘든 느낌은 있었어도(운전을 오랜만에 신경쓰고 오래했더니 그런가 샆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제주 총결산편 브런치를 쓰고
9시에 줌 회의를 한 시간 조금 넘게 할 때까지는 괜찮았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세상 한치 앞을 모른다는 말이 딱 맞는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까지는 몰랐다.
몇 년에 한 번씩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변비의
극한 상태에 직면하게 될 줄 말이다.
내 고질병 중의 한가지인 변비를 제주 여행 동안 잊고 살았다.
사실 누가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 화장실을 못가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여행을 갈 때는 대부분 호텔 로비 화장실을
아침 일찍 조용히 이용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호텔이 아니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화장실 두개짜리를 검색해서 숙소를 정했는데도 못갔다.
1층에 하나 2층에 하나였다면 갈 수 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1층에 나란히 두 개가 있더라.
그리고는 딱히 화장실을 가야한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오늘 점심 화장실에 들어섰던 그 시간 이후로 지옥문이 열렸다.
보통은 관장약의 도움을 받으면 어찌저찌 해결되었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거의 출산의 고통을 경험하고서야 나는
그 지옥의 문에서 겨우 빠져나왔고
에어컨을 튼 거실에서 대자로 뻗었다.
그 옆에는 근심어린 눈을 한 고양이 설이가 있었다.
한번 그렇게 크게 힘을 쓰고 나면 진이 쏙 빠지고 기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되고
온 몸이 너무 기운을 써서 근육통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 와중에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린다.
시범 강의 결과를 확인하라는 메일이다.
요새는 직접 그 결과를 알려주지 않고
지원 절차 플랫폼에 들어가서 로그인을 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활용하나보다.
아마도 문자발송 오류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피하고 싶은 것일게다.
손가락 까딱할 기운도 없지만
그리고 그 결과를 맞닥트려야 하는 현실이 걱정도 되지만(여러차례 이미 탈락을 경험했다.)
어쩌겠나. 아까 맛본 지옥보다는 덜 힘들겠지 하면서 사이트에 접속한다.
저런. 합격이란다.
시범강의 날 반응이 좋아서 사실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다만
합격 표시를 보니 갑자기 이십분 전의 지옥에서 천국으로 엘리베이터를 탄 기분의 변화가 느껴진다.
좋아라 할 것은 아직 이르다.
다음 주 마지막 면접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 일이 그리 호락 호락 쉬운게 아니다.
그래도 그 면접은 오늘 지옥 문턱의 사투보다는 어렵지 않고
개운하게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보다는 훨씬 쉬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면접 대비는 딱히 무엇을 해야할지 답이 없는데
해당 학교 홈페이지와 강의 관련 안내등을 훑어보는 것으로 준비해야겠다만
아직 소진된 기력이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까지는 쉬어야겠다.
중요한 것은 제주에서 맛난 것을 먹어서 한껏 올라온 식욕도 함께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아픈데 먹고 싶은게 많다는 것은 덜 아프다는 증거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엄청 많이 아프고 힘들면 먹고 싶은것이고 뭐고 하나도 생각나지도
먹고 싶은 생각조차도 나지 않는다.
그럴 때 표현이 <입안이 소태>라는 말일게다.
입안이 소태가 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 하루 천국과 지옥 사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느낌이다.
당분간 매일 화장실 간 이력을 스케줄러에 동그라미 쳐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