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

오늘은 설레는 직관날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버지와 처음으로 함께 간 동대문야구장에서

정신 놓고 보고있다가

파울볼에 맞을뻔 했는데 아버지가 머리를 쑥 집어넣어주셨었다.

지금 같으면 곤충채집망을 들고 가서라도 파울볼을 잡았을텐데

그리고 그 공에 누군가의 사인이라도 받았을 텐데

작년 원성준 선수에게 받은 사인공을 기꺼이 나에게 넘겨준 고마운 녀석들의 선물이 하나 있을 뿐.

원성준 선수님 화이팅. 한번 내 최애팀 선수는 영원한 나의 선수가 된다.


오랜만에 갔던 작년 잠실야구장에서 봤던 일몰과 불꽃놀이는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한강에서 이루어졌던 불꽃 놀이보다 비교안될 정도의 소규모의 양이었지만

배경에 깔리는 음악과 한 해 마지막 야구라는 갬성과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간다는 마음까지 합쳐져서

몽글몽글한 마음이 피어올랐고

내 생애 마지막 잠실야구장일지도 모른다는 그 마음에 아마도 많이 슬펐던 것일지도 모른다.

흰머리 가득한 야구 보는 할머니도 멋지기는 하지만 점점 티켓팅이 불가능해지는 손가락이 문제이다.

중간에 핸드폰 조명을 키고 함께 부르는 노래는

내 심금을 울리고

(그런 노래만 선곡하는 귀재들이 있다.)

파도타기 응원 몇번을 쫓아하다보면 힘이 든다.

옆 자리에서 쉬지 않고 응원을 하면서 몸을 흔들어대는 아주머니의 에너지가 놀라울 뿐이었다.


고척야구장에는 새우 맛집이 있다고 한다.

아직 못 먹어봤다.

이제 마지막일지 모르니 오늘은 꼭 먹어봐야겠다.

고척야구장은 더위와 추위도 막아주고 비가 오는 것도 아무 관계없는 아직은 유일한 돔구장이라 최고이다.

오늘 경기를 위해 고척야구장 가로수에 걸려있을 선수들 통천을 보면 가슴이 웅장해짐을 느낀다.

특히 80대를 넘어서도 아직도 펑고를 쳐주시고 잔소리를 해대면서 연습을 시키고 경기를 운영하는

노감독님의 사진을 보면 울컥함이 들 수 밖에 없다.

아마도 나는 노감독님에 친정아버지를 대입시켜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경기가 끝나고 고척야구장에서 지하철역까지 줄서서 움직이는 광경은 장관이며

질서를 지키려는 노력을 보면 많이 높아진 우리나라의 안전의식 수준을 느낄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예전과는 비할바 없이 많아진 관람객의 대세 주류가 되어버린 젊은 여자들을 보면

그 젊음이 부럽기만 하고

참으로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를 느끼게 되고

야구 중계를 라디오로 몰래 몰래 듣던 여학생 시절의 내가 생각나고

야구 중계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나의 결심에 등짝 스매싱을 날리던 친정 어머니가 생각나고

나에게 자신의 설익은 야구 지식을 뽐내다가 망신을 당한 미국 유학생 출신의 선 봤던 남자가 기억나고

(그 때 참았더라면 다른 인생이 열렸겠지)

나의 첫사랑네 고등학교 야구 응원을 하러 동대문 야구장에 갔던 기억도 난다.

(어제 학림다방에 갔더니 그 생각이 꽤 오래가는 모양이다.)


이렇게 야구장은 나에게 가기 전부터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그런 야구와 먼 삶을 오랫동안 살았었다.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장효조 선수도 가고

대학 축제에서 보았던 최동원 선수도 가고

내 옛 야구 스타들은 나처럼 많이 늙었지만

제 2의 야구 몰입기를 사는 요즈음의 나는

독립구단에서 대학야구단에서 묵묵히 열심히 훈련하는 마이너 야구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도 생겨나고

야구하는 것이 인생사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에 백번 동의하면서

나이들어서도 진심 야구하느라 열심인 레전드급 선수들에 나의 현생을 대비시키는 마음으로

오늘 <불꽃야구> 직관에 비장하게 나서려 한다.

아들 녀석이 말한다.

<아하, 엄마와 비슷한 처지와 마음이라 팩트 기반인 우리 엄마가 믿어지지 않는 오타쿠가 되었구나.>

그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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