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잘 나가가기만 하는 삶은 없다.

그래도 한번쯤은 잘나가고 싶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는 지인의 이야기이다.

자기가 모 대학의 시간강사일 때 몇 년 선배가 있었는데

지도교수님이 자신을 이뻐라하는 것에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지만 참고 있었다가

그 지도교수님이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그 지인을 계속 못살게 굴었다한다.

선배이고 능력자 집안에 남편도 유명한 사람이고 딸은 잘 나가는 미국 유학생이라

자기 힘으로는 무언가 페널티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한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왕따나 괴롭힘등으로 공론화를 시킬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으니

참을 수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는데

참으면서도 <벌을 내려주세요.> 라는 기도는 계속 했었단다.

그런데 10년 만에 그 선배는 남편이 성추행 이슈에 가해자로 지목받는 일이 떠들썩하게 소문이 나고

그 딸은 창피하다고 학업을 포기하고 그 선배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단다.

그리고 깨달은 점은 <벌은 내가 주는게 아니다. 누군가가 알아서 준다.> 였다고 했다.

이래서 권선징악이고 사필귀정이라는 용어가 있나보다.

그리고 잘 나갈 때 더 주위를 살펴보고 삶을 단단히 해야 한다는 겸손함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 야구를 보면서 왜 이 에피소드가 기억이 났을까?

분명 2주전 같은 팀의 야구를 보았는데 오늘의 전력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그때 잘했던 선수가 오늘은 영 실력 발휘를 못하고

그때 엄청 못해서 욕을 바가지로 했던 선수가 오늘은 영웅이 되었다.

야구이건 자신의 커리어이건 계속 잘나가기만 하는 삶은 없는 법인가보다.

슬럼프이건 위기이건 아니면 정신이 차려지지 않는 상황이 꼭 한번쯤은 닥치게 되는데

그것에서 어떻게 슬기롭게 빠져나오는가가 바로 회복탄력성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회복탄력성의 기본은 체력이라고 본다.

몸이 건강해야 회복도 하고 다시 돌아도 가는 것이지

몸이 아프면 절대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운동선수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다.


오늘 직관이면서 동시에 생중계가 되는 게임이 부담스러웠던 것은

놀랍게도 대학생들이 아니라 레전드들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에게 예전 나의 전성기때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래서 더욱 잘하고 싶어서 더 열심히 뛰다가

햄스트링에 부상이 오고 허리가 아파지고 근육 통증이 생기게 된것 같은 안타까운 상황에 부딪힌다.

여유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팀 전체의 위기가 커지고 자꾸 조급한 승부를 하게 된다.

계속 잘 나가기만 하는 삶도(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삶이 있기는 하다만)

계속 이기기만 하는 팀도 없다.(프로야구 1등 팀도 승률이 60%가 되기 힘들다.)

안될 때를 대비하고

그 힘든 기간을 버텨내는 것이

잘 나가는 삶을 가져오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나마 오늘은 선방했다만...


남편의 항암 경과도 그러하다.

3차까지는 큰 이슈가 없어서(물론 손과 발이 저리고 식욕이 떨어지고 어지럽기는 했으나) 항암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약간 깔봤단다.

그러다가 4차 이후부터 복수가 차고 그래서 다리도 무겁고 배는 튀어나와서 많은 어렴움을 겪으면서

그제서야 암이라는 질병의 무서움을 깨닫고 겸손해졌다가

이제는 발톱하나 빠지고 손발 저림 증상쯤은 당연하게 참고 넘어가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어느 정도 회복탄력성이 생긴 것일까?

그래도 주말에 보는 얼굴살이 너무 빠지고 늙어보여서

보는 사람조차 마음이 아픈 것은 회복이 쉽지 않다.

내일은 열 번째 항암일이다. 벌써 열 번째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싸움에서 지치지 않기를 기도한다.

계속 잘나가기만 하는 삶은 없지만 몇번 잘나가보지 않은 삶은 너무 많다.

한번은 잘나가보고 싶을 것이다. 누구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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