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48

남의 집 앞 화분에 감동한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생태전환교육이란 용어는 2019년 8월 세미나에서 처음 들었다.

환경이니, 생태 등의 개념이나 용어는 나에게 낯선 것들이었다.

런데 이런 글을 쓰게 되다니 세상 일은 참 알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다. 이 나이에도...

그러나 아직도 어느 지역의 개발과 환경보존에 대한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어느 쪽의 손도 확실히 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일방적인 개발 못지 않게 아끼고 소중하게 관리하는 일의 중요함에 대한 인식이 생긴 것은 확실하다.

또한 이런 내용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일 또한

꼭 필요하다는 것도 말이다.


교실 환경미화에 등수를 매겨서 시상하곤 했던 초임교사시절 우리 반 학생들은 나에게 묻곤 했다.

“우리 반은 개인별 화분 안 키우나요? 다른 반은 창문 옆에 쭉 늘어놓아서 보기 좋던데...”

나는 식물이 죽을까봐 겁나고 무섭다는 나의 속마음 대신

비좁은 교실과 먼지 많은 교실 환경을 핑계대곤 했다.

그랬던 내가 나이가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식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원의 나무들이 보이고 도로 밑에 힘겹게 숨어 있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보이고

남학생들의 축구공에 아파하는 학교 화단의 식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학교의 화단처럼 관심을 못 받는 학교의 구성원은 없다.

일단 별 생각 없이 학교 화단에는 그렇고 그런 식물을 심는다.

식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학교장이 있는 학교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물을 주거나 관리를 해주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더운 여름철에도 오로지 소나기에 의존한 채로,

추운 겨울도 식물 자체의 힘만으로 버텨낸다.

그런 식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기후변화나 생태환경 등에 대한 의식이 조금은 높아진 현재에도

10대들에게 식물을 보고 관찰하고 키워보는 활동은 그래서 흥미로운 활동이 되기는 힘들다.


미래학교로 옮긴 첫 해, 3학년 학생들과 생물부분의 광합성 수업을 했다.

이전 학교에서라면 광합성의 기작과 광합성량에 영향을 주는 변인들, 광합성량과 관련된 그래프 해석 등

중요하고도 많은 개념들을 이해시키느라 대부분의 수업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광합성이라는 어려운 과학 개념에 대한 이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1주일 정도를 광합성 내용으로 수업을 해도 학생들의 이해도와 관심도가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학교보다 훨씬 아름다운 그 학교의 수선동산을 보면서 깨달았다.

광합성 기작은 고등학교에 가서 혹은 과학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광합성량에 영향을 주는 변인들을 직접 알게 하려면 식물을 직접 재배해보는 것이 살아있는 공부가 아닐까. 식물에게도 생명유지에 대한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직접 느껴보는 것,

그리고 식물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것인지를 지금 나이에 체험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이것이 실생활을 기반으로 하는 광합성 수업이 아닐까... 생각이 곧 실천을 가져왔다.

시작이 매우 빠른 스타일이다.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인 공문 살펴보기,,,

마침 텃밭수업을 진행해준다는 모청소년회관의 공문이 보였다.

몇 번의 전화와 학교 방문이후에 덜컥 운동장 한 켠에 미니 텃밭을 만들었다.

미니 텃밭 만드는데는 시설관리실 선생님의 공이 90%였다.

땅고르기부터 거름주기 등 사전작업을

다 진행해주셨다.

만들어진 텃밭에 무엇을 심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법은 해마다 변화하였다.

처음에는 전문가 그룹의 안내를 받았다.

가장 관리가 쉽고 잘 죽지 않는 식물들

초보인 1학기에는 쌈채소 종류였다.

다들 시작은 그러하다.

수업 시간 중에 심고, 설명 듣고,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물을 주는 작은 노력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하고 쑥쑥 자라는 것이 눈에 잘 보이고 여하튼 생각보다 어려움이 없이 잘 자라주었다.

학기말에는 샐러드를 해먹고 쌈을 몇 번 식당에 제공할 정도로...


첫 해 미니텃밭에서 좌절감을 맛보았으면 더 이상의 도전은 없었을텐데

2학기에는 더욱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되었다.

배추랑 무를 키워서 김장에 도전해보자는...

시작할때에는 비록 실패해도 농업이나 식물 생장의 어려움을 학생들이 알게되는 것 만으로도

소정의 목표를 달성한거라 생각했는데 자꾸 욕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물의 생명력을 놀랍게 관찰하는 그 느낌이 좋아서 계속 텃밭 활동을 진행하게 되는 것 같다.

무가 쏘옥 올라온 것을 보는 기쁨, 딸기가, 오이가, 참외가 수줍게 달려있는 것을 보게 되는 날의 상큼함은

무엇에 비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물론 비가 너무 안와서 주말에도 물을 주러 오는 수고,

물주기의 어러움을 줄여보기 위해 빗물저금통을 설치를 알아보는 과정,

자동 관수 시스템에 대한 연구등 부수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노력없이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은 없다. 텃밭 작물도 그렇다.


오늘 오후 내일 아침 중요한 행사를 위하여

머리 드라이를 하러 나섰는데 시간이 조금 일렀다.

골목길을 이곳 저곳 돌았다.

개인 주택 집앞 혹은 대문 앞 혹은 계단 위로 화분들이 나란히 놓여있다.

어느 식물 하나 이쁘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입으로 떠드는 생태전환교육보다 이런 식물 하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사진을 찍고 그것을 살펴보는 것이

백배는 더 효과적이다.

집 밖에 멋진 식물 화분을 놓아주신 분들이 지나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댓가없이

진정한 생태전환교육을 실천하시는 분들이시다.

오늘 나는 어느 집 앞 대문에 늘어진 능소화와

막 피어나려고 하는 분꽃과 다양한 색깔의 백일홍

그리고 수줍게 꽃이 핀 가지꽃과 고개 숙인 하얀 고추꽃을 찍었는데

고민 끝에 백일홍을 대문사진으로 픽하였다만

선정 과정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

내 수준에서는 이상형 월드컵 결선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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