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을까?
올해 들어 가장 잠을 못 이룬 밤이었다.
우당탕당 우여곡절 끝에 재취업이 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지도
그 전날 의사 제자에게 들은 남편의 치료 예후 과정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을지도
갑자기 해야할 많은 새로운 강의 걱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젯밤 잠이 안오는 그 몽롱한 과정에서
몇 가지 큰 줄거리는 결정했다.)
아마도 오늘 해야하는 생전 처음 새로운 직종의 아르바이트에 대한 걱정도 한몫했을지 모른다.
아직 무엇을 하는지만 알고 어떻게 하는지는 하나도 모르니
간단한 점심을 준비하고 나머지는 가서 부딪혀 보려 한다.
이제 아르바이트는 안하는 거 아니냐고? 그 사이에 백수를 즐기라고?
미리 약속되어 있었던 것은 물론 한다.
소중한 기회를 나에게 알려주고 제공한 사람들에게 대한 신뢰의 문제이다.
그리고 새로운 일이 얼마나 나를 긴장하게도 하지만 또다른 강의 이슈를 알려 줄 것이 틀림없다.
그 기회를 왜 마다할 것이냐? 그렇게 씩씩하게 하려 한다.
그리고 그 잠 안오는 시간에 3월부터 어제까지의
나의 도전과 실패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사실 2월까지는 아무런 재취업의 준비를 하지 않았었다.
후배들과 동료들을 만나고 그간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막연하게 재취업을 생각하고는 있었고 호락호락 하지 않을 것도 알고는 있었다.
1년 먼저 정년퇴직을 한 초등학교 동창의 사례를 보니 그랬었다.
이력서 100개는 내볼거라고 했었고 나처럼 재취업의 의지가 뚜렷했었는데
잘 안되어서 결국은 내가 소개한 후배의 영재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나도 비슷할 수 있다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막연하게 개인사업자 등록만 하고(인터넷으로 금방 되더라) 제주 여행을 떠났었다.
하필 제주에 있는데 막내 동생이 알려준
지방 H대 초빙교수 공고가 떴었고
제주에서 그 많은 서류를 갑자기 준비하느라 제자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첫 시도인데 서류가 통과되어 면접까지 가는 행운이 있었고
와우. 이렇게 한번에 된다고 싶었는데
결국은 탈락이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할 마땅한 강의가 없었다.
사범대학도 없었고 교양학부의 자연과학 강의는 공대교수들이 맡아하고 있었고
새로운 강의를 개설해서 나에게 줄 만큼의 내 가치가 높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처음 떨어진 날이라 가슴은 많이 쓰렸다.
그 이후로 많은 대학의 교수학습센터 및
다양한 부속 센터연구원(학생상담, 폭력,취업, 각종 목적을 갖고있는 센터들이 엄청 많더라.)에 집중 지원을 했다만
(대부분 석사학위를 요구하는 자리였음에도)
모두 서류 광탈이었다.
그것도 살펴보니 1년씩 기간제로 계약을 해서 이미 지난해에 그 일을 맡아했던 사람들이 있는 자리였던 것이다.
구인은 하지만 사실상 구인은 아닌 형태이다.
그 자리를 맡아놓은 사람이 있는 자리이다.
1년 계약직 자리의 함정이다.
그런데 이해는 간다.
그 일을 1년 해서 돌아가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쓰는 것이 업무 효율을 따졌을 때 월등하다. 아주 이상한 사람을 배제하고 싶어서 만든 가짜 취업 자리이다.
일선 학교의 기간제 자리도 그렇다.
작년에도 뽑았던 자리라면 그 사람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전에는 대부분 썼던 사람을 쓴다.
인지상정 측면에서도 그렇고 일의 효율면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센터장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어야 업무 지시에 편하다. 인정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아쉬웠던 것은
영재교육 분야의 강의와 연구를 전담하는 센터와
서울시교육청의 과학고 중 단기 비상근 학생 선발 요원이었는데(되었더라도 못갈뻔 했다만)
누구보다도 적격자라고 생각되는 나를 떨어트린 이유는 아마 여러 가지일 것이다.
많은 나이와 내용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어떤 직종은 너무 많이 뻔하게 알고있는 사람을 쓰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자신들의 일하는 시스템에서의 부족함이 드러날 수도 있고
오히려 일을 더해야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을
몹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추가로 생기는 일은 내가 다 처리할 것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예 중등학교 기간제는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을 많이하는 민폐녀로 등극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들은 나의 업무 스타일을 알지 못한다.
서류에는 그런 나의 스타일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다.
아마 재취업을 위한 서류를 족히 20개는 작성했던 것 같고
비슷비슷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다 각각 조금씩은 다른 내용이었고
중요한 것은 나는 절대 AI를 활용해서 자기소개서를
쓴 적이 없고 진심이었다는 점이다.
이번 취업한 곳에서 면접 당시에 들은 칭찬은
해당 학교 교육과정에 대해 이해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쓴 자기소개서라고 했다.
글쓰기를 담당하는 교수님의 칭찬이니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어제 면접의 마지막 나의 대답은 이랬다.
<저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의 진심을 믿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교수인 것을 학생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즐겁게 그러나 의미 있는 과학 관련 강의와 활동을 운영해보겠습니다.>
오늘의 아르바이트는 내가 해야 할 강의와는
형태로는 1도 관련이 없지만
내용은 어쩌면 강의에 활용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이제 간단한 점심은 준비했고 씻고 나가보려 한다.
(초행길이라 일찍 도착해서 크림치즈 바른 빵을 우걱대며 먹고있다. 그것도 차 안에서. 마치 잠복 근무하는 형사같다. 스릴은 넘치는데 화장실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