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재취업 성공기
오전 10시의 모 대학 초빙교수 면접은 줌으로 진행되었다.
지방이라서 그렇기도 했지만(아주 먼 곳은 아니라 서울 근교이다.)
그래도 내려오라 할 수도 있는데
(하루 아르바이트를 시키는데도 면접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물론 면접비는 주지 않았고 서울역 나들이라고 생각하고 갔다만 다행하게도 합격했었다. 계속 행사가 있는 줄 알았다만 아직까지는 1회성 행사였다.)
줌으로 처리하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었다.
무언가 일처리가 스마트하다는 생각인데
무조건 좋게 봐주고 싶은 재취업에 대한 간절한 내 마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면접 시간이 다가오면서 정말 오랜만에 기분 좋은 떨림이 시작되었다.
재미있거나 새로운 일을 앞두고 가끔은 이런 떨림이 가끔 찾아오곤 했다.
고등학교 때 버스 정거장에서 멋진 남학생을 보았을 때도 안생기던 떨림이다.
가장 최근에는 <불꽃야구> 퍼펙트 게임 완성 직전에 잠시 느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다되어가는데 자신의 애착 자리에서 오전 낮잠을 즐겨야하는 고양이 설이가
웬일인지 도통 내 주위만 맴돌고 있다.
내 눈치를 보면서 계속 나를 주시하고 살피고 있다.
뭔가 고양이 느낌에도 평소와는 다른 긴장된 분위기가 감지되었나보다.
그래도 면접중에 낑낑거리거나 노트북 화면을 가로질러 가지는 않았다.
설이를 방에 가두어 두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다.
그래야 결과가 안좋아도 받아들이기 쉬울 듯 해서였다.
막상 면접이 시작되니 원래 알고 있던 친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처럼
순삭한 것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분위기가 좋아서 면접이 끝난 후
잠시 기대에 부풀었는데
너무 기대하다가 실망하게 될까봐
비가 살살 오는데 굳이 산책을 나섰다.
비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인데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였을 것이고
고양이 츄르와 내 로션을 사는 것이 목표라고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말이다.
아침도 못먹은 나를 위해 김떡순도 샀다.(미니 김밥과 떡볶이, 순대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고요하고 멋진 비오는
대학 캠퍼스를 굳이 가로질러서
(연습하는 라크로스팀말고는 아무도 없더라.)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는데 합격을 알리는 톡이 들어왔다.
물론 공식문서는 아니었다만...(그것은 결재 처리 과정이 있으니 금요일에 보내준단다.)
순간 비오는 것도 잠시 잊어버리고 우산을 내려놓았다.
기쁘다. 계약 날자는 모르겠지만 일단 9월부터는 내가 좋아라하는 강의를 계속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교양 수준에서의 자연과학 관련 교과목 이름이었다.
물론 교과목 이름은 그렇게 하고 강의 내용은 다르게 하는 그런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만
<과학적 사고와 상상력>, <인물로 알아보는 과학의 역사>
두 가지 교과목이 모두 다 나의 관심 분야였다.
과학적인 사고 과정은 내가 제일 중요라하는 관찰과 데이터 분석과 연결고리가 있다.
그리고 상상력이지만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상상력(물론 터무니 없는 상상력도 중요하기는 하다만)은
미래를 만들어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과학사는 학위과정 중에 열심히 청강까지 했던 교과목이다.
사실 나는 과학보다 역사를 더 잘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과학사 강의를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왜 그런 발견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맥락을 이해하는 일은 과학 내용 전반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비교과 영역의 프로그램도 한 꼭지 진행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기존에는 <Science Talk> 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나본데
SF 소설에 있어서의 우주과학 부분을 중심으로 다루었던 것 같다.
그런데 비전공자에게는 과학이라는 용어가 들어가는 순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어떻게 변형을 시켜서 운영할 것인가는 나의 자유도와 창의력이 필요하니
이번 주말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다. 신난다.
주말에 할 일이 있다.
중학교에서 동아리나 방과후를 열심히 했던 경험이 많으니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만
문화산업과의 연계고리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가 핵심이다.
벌써 제출할 자료 파일을 받았다.
자료 파일을 받고 보니 이제 실감이 난다.
나. 재취업에 성공했구나. 고맙고 기쁘기 짝이 없다.
3월부터 6월까지는 재취업을 막연하게 준비하고 생각하면서 조금 혹은 많이 기분이 다운되었다면
이제부터 8월말까지는 기쁘게 남은 백수의 날들을 본격적으로 즐겨보겠다.
나를 선택해준 것이 잘못된 선택이 되지 않게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기분 좋은 떨림과 신남.
브런치를 쓰지 않을 수 없는 날이다.
브런치는 은퇴 후 재취업까지 가는 나의 과정을 고스란히 함께 해준 동지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책이 되어 누군가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거나 힘을 줄 수 있다면
(내가 다른 글들을 보고 그랬던것처럼)
더이상 바랄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