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시작
오늘 친구의 소개로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파트 집집을 방문해서 배수구를 중심으로 소독약을 살포하는 아르바이트이다.
아마도 집에 소독하러 오는 분들을 보신 경험이 한번쯤은 있으실거다.
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것이다.
사실 나는 그 사이 계속 출근을 했었으니 우리 집에 와서 소독하는 것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고양이 때문에 조심했던 마음도 조금은 있었는데 여름이면 벌레들이 생기니 소독을 해야하는 것이 맞다.
오늘은 내가 그 소독을 하러가는 역할을 하게 된다. 역지사지 체험이다.
9시까지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 커뮤니티 센터로 오라했다.
오늘의 사수는 친구의 동생이다.
출근길 정체에 걸릴까봐 7시에 집을 나선다.
보내준 주소를 그대로 복사해서 카카오맵에 붙였다.
어라. 카카오맵이 못찾는다.
이제 카카오맵을 버려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다시 다음 길찾기에 붙여본다. 아래로 내려가니 지도가 나온다.
생각보다 길을 안 막혔고(아직 출근길이 아니었고 중심부와는 반대편이다.)
8시 15분쯤 도착해서 차에서 크림치즈를 바른 샌드위치 준비한 것을 먹으면서
친구가 준 오늘의 활동 매뉴얼을 읽고 있는데 사수로부터 전화가 온다.
쎄한 느낌이 든다. 여기가 아닌 듯 하다. 이상하다.
단지내 들어올 때 차량 임시 통행 허용 메시지도 떴고
내비가 가르쳐주는대로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왔는데 말이다.
결론적으로 여기는 같은 이름 아파트 1단지이고
내가 가야할 곳은 2단지였다.
진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도 일찍 왔으니 여유는 조금 있겠지 싶어 단지를 나가니 곧 2단지가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차량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오류이지 싶어서 소독이라고 이야기 하고 안내를 받아 지하주차장에 들어갔는데
이제는 커뮤니티센터를 찾기가 힘들다.
이건 무엇일까 싶은 순간 또 사수의 전화가 온다. 여기도 아니란다. 비슷한 이름은 다른 아파트란다.
이제 나는 완전히 멘붕 상태이다.
그리고 진땀 폭팔이다.
나에게도 땀이란것이 그리 많은지 오늘 알았다.
첫날이라 배워야 할 것도 많은데 이것이 무엇인가?
가급적 냉정함을 잃지않으려 추스리면서 또 다시 내비를 켜고 2단지를 찾아간다.
이번에는 맞는 것 같은데 또 커뮤니티센터가 보이지 않는다.
지하 1층 앞이라는 사수도 안보인다.
이제는 땀이 아니라 거의 정신을 잃기 직전이다.
차를 돌려 천천이 다시 나가보려 한층을 올라오는데 아뿔싸 거기가 지하1층이다.
모 출입구에서 한칸을 내려가면 지하 2층이 되는 묘한 구조가 숨어 있었다.
나는 하필 그곳으로 내려간것이고
한층 내려갔으면 당연히 지하 1층이겠지 생각한
내 모자람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사수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이미 진땀은 날때로 나서 탈수 직전이다.
요새 이렇게 진땀이 났던 적이 기억나지 않는다.
35℃ 날씨의 태국어디쯤에서인가 다섯 시간 18홀 골프를 쳤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몽롱함이다.
그러니 오늘 아르바이트 본연의 이야기는 내일 아침에 정신을 차리고 써봐야겠다.
아무리 내가 본태성 길치라도 이럴 수는 없다.
삼세번이라는 말도 액땜이라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다음 길찾기도 쓰지말아야겠다.
네이버 길찾기가 더 나은 듯 하다.
그리고 같은 이름의 1,2,3,4,5 단지 이름을 가진 아파트 관리소장님들이여.
나처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지하 주차장의 동 호수 표시를 더욱 크고 명확하게 만들고
커뮤니티센터와 출구 표시는 특별히 더 크고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달라.
아르바이트는 하지도 못하고 아파트 찾다가 기력을 다 소진했다는
창피한 이야기는 이곳 빼고는 어디에다 하소연하기도 힘들다.
아니다. 친구에게는 했다. 자세히는 못했고 브런치글을 읽어보라했다.
아침 9시 40분에 이미 하루 동안 소진할 에너지를 모두 써버린 허망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덕분에 오늘은 꿀잠 예약이다.
집에 와서 씻고 났더니 벌써 졸음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