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히고 코도 막혔던 아르바이트 소감문2

다음에는 잘 할 수 있겠지?

by 태생적 오지라퍼

분명 몸이 힘든 것 같은데 이틀째 푹 자지 못했다.

어제도 초저녁에는 엄청 졸렸는데

그 시간을 지났더니 다시 똘망똘망해져서 여러번 깼다.

일이 모자랐나? 걸음수는 만보가 훌쩍 넘었던데 말이다.

어제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다시 복기해보자.

아파트 단지를 찾느라 정신이 홀딱 나갔던 9시 40분 이후 일이다.


일단 오늘의 소독을 위한 기구들을 수령받는다.

소독이라고 쓰여진 조끼와(주머니가 많이 있다. 바퀴약을 넣어다닌다.)

아파트 어디라도 다 들어갈 수 있는 만능카드키(물론 사용 후 반납한다.)

그리고 소독용 분무기(안에 소독 약품이 들어있고 물로 희석해서 사용한다.)이다.

소독 약품이 무엇인지는 아침의 난리로 확인까지는 못했다만 이름은 싸이퍼킬이라고 되어 있다.

전공을 살펴 화학약품명은 다음번에 알아보려 한다.

친구가 강의 나가기 전까지 심심풀이 운동삼아 몇 번 더 하라고 시간을 잡아두었다. 나쁘지 않다.

그리고는 사수가 한 집 소독하는 방법을 살펴본다.

화장실과 세탁실의 수채구멍(정식 명칭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옛날부터 그냥 수채구멍이라 불렀는데...)에

소독약을 분무하는 형식이다.

한 집 하는 것을 보고 이제는 나 혼자 실전소독을 담당하는 강하게 키우는 형식의 아르바이트이다.

그래서 초짜를 담당하는 사수가 힘든 법이다.


대단지 아파트이므로 동 호수 별로 구조가 다 다르다.

따라서 안방의 방향과(그 안에 화장실이 하나 더 있다.)

세탁실과 베란다의 물빠짐 수채구멍의 위치 파악이 쉽지 않다.

대형 구조는 화장실 2개, 세탁실과 베란다 까지

총 4곳에 소독약을 분무해야 하고

소형 구조는 화장실과 세탁기 아래 2개만 하면 된다.

먼저 이 아르바이트를 한 친구의 말을 빌면 멋지게 인테리어 한 집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했는데

아침부터 혼이 나간 상태의 초짜 눈에는 그런 것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단지 집안 정리를 잘 한 집과 그것이 안된 집 둘로 나누어질 뿐이다.

우리집에 오시는 소독이나 각종 AS 담당자님들도 아마 그런 것을 느끼셨을 듯 하다.

보려고 작정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안 보일 수가 없다.

청소와 정리가 그렇게 중요하다.


안타까운 집도 있다.

대부분 아픈 어르신이 계신 집인데 청소와 정리가 되어 있을리 없다.

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전문가가 투여되어야 할 정도의 경우도 있다.

그러니 자꾸 하얀색 벌레가 나온다고, 바퀴벌레가 있다고 약을 많이 쳐달라고 하신다.

그런데 많은 약을 투여하면 어르신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다.

소독이 문제가 아니라 버릴 것을 버리고 짐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인데 말이다.

그리고는 처음보는 나에게 끊임없이 자식 이야기를 하신다.

보고 싶어서 그럴 것이다. 심심해서 그럴 것이다.

양로원에 계신 시어머님을 뵙는 듯 하여 마음이 아프다.

다음 번 남편 항암일 다음날 어머님을 뵈러 가기로 했는데...


인형처럼 앉아있던 강아지가 소독약을 훑어먹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혹시 소독약 뿌려놓을 것을 만질까 걱정이 되어

내 오지랖이 또 발동하여 아이 오기 전에 꼭 물로 닦아내시라고 당부를 한다.

생각보다 다문화 가정이 꽤 있다는 것에도 놀라고

아직도 문을 열어놓고 사는 아파트가 있다는 것에도 놀라고(물론 입구에 방충망 커튼이 있다만)

소독하러 온 사람에게 고맙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놀라웠다.(아르바이트인데 말이다.)

물론 언제 오냐고 연락을 하고, 신청을 안했다가 추가하고 정작 가보면 안계시고 이런 집들도 분명 있다만...

조금은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노쥴에서 소독약이 흘러서 엄청 당황했고

(하필 외국인 집이었다. 플리이즈 티슈를 외쳤는데 다음 부터는 휴지를 가지고 다녀야 겠다. 조끼에 주머니가 많은 이유가 있다.)

하필 며칠 전 업그레이드한 휴대폰 설정을 변경못해 무음으로 되어 있는 휴대폰 덕택에 빠른 연락을 못받아 난감한 일까지 발생했다. (저녁에 드디어 벨소리로 바꾸는 방법을 찾았다.)

오늘 하루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케이스의 일들을 모두 경험하고 아르바이트를 마감했다.

별 도움이 못된 것 같아 사수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그러나 오늘 어느집에서인가 고생한다고 쥐어주신 초콜릿바와 빨대까지 꼽아주신 차가운 옛날 야쿠르트는 정말 맛났다.

앞으로 나도 하나씩 준비해서 드려볼까 싶다.

우리집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러 오신 분들에게 말이다.

당장 오늘 아홉시 광파오븐 AS 가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신고를 하고 코드를 오래 빼두었다가 어제 다시 끼었더니 이상이 없는 듯도 보인다.

요상한 일이다. 전문가가 오면 잘 된다.


어제의 마지막 어려움의 절정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이었다.

네비게이션을 족족 잘못 이해해서 길을 돌고 돌아서 서울 시내 한복판을 관통했고

하필 시내 중심에서는 모 단체의 시위가 있었고

길은 엄청 막혀서 갈 때의 두배가 걸렸고

덕분에 오랜만에 익숙했던 그 퇴근길을 경험했고

돈 버는 일에는 쉬운 것이 없다는 말을 절감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아르바이트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든 노동은 숭고하다. 범죄와 연관된 나쁜 일은 절대 안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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