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럴 것 같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하나뿐인 아들 녀석이 예정일보다도 5주나 전에 밖으로 나오려고 애썼던 곳은 길동에 있는 모 아파트이다.
돌아가신 외삼촌이 혼자 살고 계시던 아파트였는데
시부모님과 함께 살던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독립을 하려고 이사온 곳이었다.
시어머님께서 출산 후 아이를 봐주실 수 없다하여 분가를 결심했었다.
그리고는 내가 육아 휴직을 하고 아이를 키워보리라 생각했었는데
배불뚝이가 이사를 하느라 오래 서있고 신경을 써서 그랬는지
이사 하고 바로 다음날 태반조기박리가 일어나면서 부정출혈이 시작되어
갑작스럽게 병원으로 가서 갑작스럽게 수술에 들어갔고
결국 아들 녀석은 길동에서 단 하루를 내 뱃속에서 보내고는
그 이후 그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당시 나는 신월동에 있는 학교에 다녔던 때인데
혼자 길동에서 육아를 하려니 너무도 무서웠다.
결국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기로 했고(아들이라 키워주겠다 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다.)
산후 조리후 목동지역으로 다시 이사를 왔고 그 이후로 길동은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길동의 그 아파트가 지금 아들 녀석 회사 맞은편에 있다.
회사가 고르고 골라서 빌딩을 사가지고 입주했는데 바로 그 아파트 맞은편이었다.
길동이라고는 그 아파트밖에 모르는데 말이다.
결혼하고 시댁에서 1년을 살았는데 그 위치가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이다.
남편과 산책하던 그 길이 지금 내가 열심히 산책하는 곳인데
이 근처에서 다시 살게 될거라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마냥 목동에서 살 수 있을 줄 알았었다.
남편이 IMF때 집을 날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도 못했다.
길동에 살던 그 외삼촌이 모은행 지점장하던 곳이 바로 근처이며
일부러 외삼촌이 다니시는 은행의 계좌를 개설해서 지금까지 그 은행이 주거래 은행이며
외삼촌이 지점장이셨던 그 곳에서 나는 내 생애 최초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었다.
그때만 해도 아무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주지 않을 때였으니
어쩌면 지점장 권력을 이용한 특혜였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현대 전자 다닐 때 매일 통근버스를 타던 그 곳에서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고 가끔 마중을 나가곤 했었다.)
나는 2학기부터 초빙교수 강의를 위한 셔틀버스를 탈 예정이며
(신기한 일이다. 그 정거장을 다시 가는 일이 생기다니. 무려 삼십 오년만이다.)
친정집에서 키웠던 단 하나의 강아지는 하얀색 백순이였고
지금 내가 키우는 단 하나의 고양이도 하얀색 설이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이즈도 둘이 똑같다.
무슨 맥락의 글의 흐름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공간이나 생물이나 물건들이 돌고 돌아 비슷한 느낌을 줄때가 있다는 그런 뜻이리라.
어떻게 생각하면 인생이란
완벽한 시나리오가 있는 채 살아나가는 것도 같고
(물론 자기 자신만 그 시나리오의 결말을 모른다. 스포도 금지되어 있다.)
어떤 날의 데자뷰인것도 느낌도 들다가
하루는 전혀 생뚱맞고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멀쩡하다가 아무 이유 없이 쌀쌀 배가 아파오는 것과도 같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라는 과제이다.
오늘 공식적으로 초빙교수 합격 문자를 받았다.
이제 관련 서류들을 발송하면 되고
계약서는 전자문서로 처리한다 했고
워크숍에서 교양교육원 교수들과 인사를 나누면 되겠다.
막내동생과 톡을 나누었다.
엄마, 아버지가 계셨으면 좋아하셨겠다고.
아파서 재활병원에 계시면서도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딸 둘을 박사 만든 사람이라고 자랑하셨던 분이셨다.
아마 하늘에서도 기뻐하고 계실 것이다.
다시 분꽃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