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는 문화생활도 힘들게 한다.

사진이 주는 에너지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 오전 일정은 얼음 나오는 냉장고의 정리 A/S를 받은 후

영재 판별 3문항 출제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A/S 가 끝나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커뮤니티센터 카페로 가서

차나 음료를 한잔 마시면서 준비해둔 문항을 정교화하면 되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 녀석의 톡이 들어온다.

자기가 필요한 일 빼고는 절대로 먼저 톡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아마도 그것이 상남자 스타일이라고 마마보이가 아닌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기 방 드레스룸에 있는 텀블러를 자기가 요즈음 숙소로 사용하는 오피스텔 우편함에 넣어달란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주거형 오피스텔 이야기는 차후에 한편으로 정리해보겠다. 아직 진행형이다.

저녁에 니가 와서 가져가면 안되냐니까

오늘 저녁 약속이 있는데 그걸 가져가야 하고 시간이 빠듯하다고 한다.

나는 쿨한 엄마이다. 아직도 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할게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러마 했다.

그리고는 그 건물 전시관에 예약해두었던 사진 전시를 보고 오는 문화생활을 계획했다.


두 개의 전시를 모두 다 보면 할인이 적용되어서 미리 선예매를 해두었었다

나는 그림 전시회도 좋아라 하지만 사진 전시회를 조금 더 선호한다.

내가 다가가기 쉽다는 접근성에서 기인하는 듯 하다.

<ALEX KITTOE> 와 <Jonathan Berton> 전시회이다.

두 사람의 사진 작품은 묘하게 닮은 듯 다르다만

주로 자연이 배경이고 자연스런 삶의 현장의 아름다움을 나타냈다는 점에서는 맥락이 비슷하다.

나는 이런 결의 작품을 좋아라한다.

너무 추상적이거나 너무 환상적이면 마음에 와 닿지는 않더라.

한 사람은 배경이 미국이고 대부분은 콜로라도, 알래스카, 아이슬란드이며

다른 한 사람은 프랑스와 뉴욕인데 신기하게도 2023년 서울의 여러곳을 사진으로 담았다.

당연히 나는 서울 사진에 관심이 더욱 갔다.

경복궁, 을지로, 동대문 시장, 청량리 과일과 채소시장, 마장동 고기시장, 홍대앞과 이태원 마켓, 그리고 잠원 한강공원 수영장 등을 사진으로 담았고

특히 한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고 작가 스스로가 고백하고 있었다.

나는 그 중에 당연히 내가 3년간 매일 출퇴근했던 을지로 사진에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물렀다.

2023년이면 나도 을지로에 있었을 시기이다.

오다가다 사진기를 들고 골목 골목을 사진찍는 파란눈의 외국인들을 많이 보았었는데

그들 중 한명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봐도 골목과 각종 간판들이 다른 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듯 한데

외국인 눈에는 얼마나 신기했을까나.

사진 속에는 그 작가의 기분과 시각이 투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사진이 좋다.


정년 퇴직 선배 언니의 말이 생각난다.

퇴직 1년차에는 이것 저것 전시회도 보고 영화도 보고 문화 생활을 시도한단다.

그러다가 2년차에 접어들면 전시를 보는데 사용되는 돈이 아깝기 시작해서

무료 전시만 보러 다니게 된다고

지하철 무료 티켓을 쓸 수 있기를 고대하게 된다고

대충 먹고 대충 입고 대충 사는 것에 익숙하게 된다고

그날이 그날이고 계절 변화에도 둔감하게 된다고... 조금은 슬픈 이야기이다.

뇌가 쉬고 싶을때는 전시를 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제목에 반은 동의한다.

전시를 보면 조금은 새로운 뇌의 움직임과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문화생활의 긍정적인 면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러나 오늘 전시에서의 작가의 이야기 중에 눈에 띄는 내용은 단연 이것이었다.

<매일 같은 곳을 다녀도 매일 다른 모습이 보이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맞다. 매일 같은 곳, 같은 모습은 없다. 따라서 같은 사진도 없다.

나는 사진과 함께하는 글로 이루어진 책을 내보고 싶은 것이 버킷리스트이다.

그리고 오늘과도 같은 멋진 전시를 하게 된다면 더더욱 바랄게 없겠다.

그래서 잘은 모르지만 내 마음 가는대로 사진도 계속 찍고 글도 계속 쓰는 중이다.

그런데 문화생활을 마치고 집까지 걸어오는

그 거리가(종종 걸어다니던 곳인데도) 무지 더워서 힘들다.

더위는 우아한 문화생활도 힘들게 한다.

이제 시원한 곳에 가서 문항 출제에 전념해봐야겠다. 오늘 완성하고 제출하는 것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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