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듯한 하루가 지나간다.
노안이 되고나서 독서를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내 눈이 나빠진 이유의 99.9%는 책을 너무 빨리 많이 읽어서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책을 읽는 것을 좋아라하지 않으셨다.
너무 많이 빠르게 책을 읽고 책을 읽으면 몰입의 정도가 너무 높은 나의 독서 스타일이 싫으셨던 것인지
내가 읽는 속도와 종류에 맞는 책을 계속 공급해줄 수 없었던 집안의 경제력을 고려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후자이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한 친구 집에 가서 주로 책을 읽었다.
그 친구네 집에 놀러간다고 가서는
친구는 옆에 두고(그 친구는 독서를 즐겨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친구 동생과 함께 그 당시 부잣집에만 있던 전집들을 모두 꺼내놓고
마치 빨리읽기 시합이라도 하는 듯 매일 독서만 했다.
오죽하면 친구가 <야 너 집에 가. 나랑 놀지도 않고 책만 읽으면 뭐하니?> 이런 말을 했을까?
집에는 없는 그 멋진 책들을 가급적 빠르게 읽었어야 했으니 그때 내 시력이 확 나빠질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무리하면 나빠진다.
그리고는 안과에 가서 시력검사를 하고 안경을 맞추는 동안 엄마는 계속 나를 째려봤었다.
이쁜 눈이 안경을 써서 튀어나오고 개구리 눈이 되었다고 계속 구박하셨더랬다.
그 당시 나와 경쟁적으로 전집을 읽던 친구 동생은
그 후로 서울대를 나와서 젊은 나이에 박사가 되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학회를 다녀오던 저녁 피곤한 야간 졸음 운전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결혼한지 6개월. 두고 두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제 2학기 새로운 출강 학교 비교과 프로그램 운영 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참고할 책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 근처 대형 문고에 산책 겸 나서서
교양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쉬운 접근이 가능한 주제로 이루어진 책을 두 권 골랐다.
그런데 최근 발행된 책은 아니다.
하나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2001년 초판 발행)
다른 하나는 궤도의 과학 허세(2018년 초판 발행) 이다.
한 분은 유명한 과학자이고 한 분은 유명한 과학 유튜버이다.
두 책은 약간은 결이 다르지만 주제가 일단 일상생활에 친숙한 내용을 바탕으로
교양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내가 희망하는 강의 스타일과 닮아있다.
정재승 교수의 직강을 이화여대에서 진행된 교사 연수에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책도 재미있게 쓰지만 강의도 참 재미있게 한다.
일단 강의 도입 부분이 참신했고 내용이 그다지 어렵지 않으며 강의에 계속 몰입하게 구성하는 유명 강사의 아우라가 있었다. (내가 추구하는 강의 방향이다.)
궤도의 강의는 직접 들어본 적은 없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분야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어느 범위까지를 포함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만
대학생들이 알만한 과학 유튜버의 대표자라 책을 한번 읽어보고 내 강의에 시사점을 얻어보자 생각했다.
이제서야 오랜만에 교양 과학과 관련된 책을 읽고(아직 한 챕터밖에는 못 읽었다.)
친구의 추천을 받아 과학 유튜브도 보려 한다.(너무 길지 않고 재미있는 것은 강의에도 활용할 생각이 있다.)
역시 사람은 무언가 닥쳐야 준비를 하게 된다.
닥치지도 않았는데 독서하는 사람들은 찐 독서가 취미인 사람들이다.
어느 장소에서이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아름답다.
어렸을 때 나의 취미란에는 무조건 독서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랬던 독서를 잊고 있었던 시간이 꽤 되었다.
참고서나 자습서 혹은 교사용 지도서만 읽은지 오래되었던 나를 반성한다.
오랜만에 하는 대학 강의는 기대되기도 하고 준비가 많이 필요하기도 하다.
비교과 프로그램 계획서는 완성했고(피드백은 받아야하지만)
영재 판별 문항도 수정보완해서 보냈고(마음에 백프로 만족스럽지는 않다만)
다음 주 부터는 방과후 특강이 진행될 것이니 그 준비도 해야하고(1주일치만 일단 준비했다. 수준과 시간은 한번 해보고 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으므로.)
갑자기 일이 폭풍처럼 몰려오는 느낌이 결코 싫지 않다.
그리고 그 일들을 다 잘 해내려면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한다.
그래서 오늘 점심도 많이 먹었다.
물론 수다를 먹은 것보다 더 많이 떨었던 것 같기도 하다만...
물론 즐거운 식사와 디저트와 수다를 함께 해준 오래된 친구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염색도 하고 뿌듯한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