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내 본업은 도보산책가이다.
아침 10시 서대문역에서 모종의 심사 아르바이트가 있다.
그럴 경우 15분쯤 일찍 도착해주는것은 담당자를 위한 센스이다.
전원 참석이 아니면 회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데
꼭 1분전에 나타나는 분이 있다.
서대문역은 내 퇴직 전 두번째 학교 5년 근무지이니
그 지역은 잘 아는 편이다만
지하철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은 걸어본지 꽤 되었다.
심사가 끝나고는 서울에서 손꼽히게 오래된 서소문아파트? 이름이 맞나모르겠다.
이곳을 둘러보고 기차, 새 건물, 그리고 오래된 아파트가 한 프레임에 들어오게 사진을 찍었으나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서대문역 인근 학교로 발령받고
그 근처에서 무언가 일을 하다가
미로처럼 얽힌 이 아파트 안의 식당에 간 기억이 있다.
컴컴하고 야리꾸리한 외관이었는데
맛은 기가막혔다.
음식 종류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무슨무슨 매운탕 종류였던것 같다.
후배와 칼국수를 먹고는
교육청을 지나 언덕길에 오른다.
물론 계획에는 전혀 없던 일이다.
행궁동, 송월길, 홍파동, 사직동, 내자동을 이어주는
큰 반원을 걷는다.
만보가 훌쩍 넘지만 오늘은 많이 덥지는 않다.
좁은 언덕길과 오래된 집들 사이에
홍난파 구옥도 있고 이화영 기념관도 있고
달쿠샤도 있고 이름 모를 할머니네 집도 있고
(집 문 앞에 나와서 앉아계신다. 그 자체가 그림이다.)
오토바이 아래 숨어서 자고있는 길고양이들도 있다.
구옥과 빌라와 새로 지어지는 꼬마빌딩이
아무런 규칙없이 섞여있지만
어느것 하나 튀지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강남의 큰 대로변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는 한때 2년간의 내 거주지였던
사직동과 광화문 사잇길을 걸어서 귀가를 준비한다.
상호와 메뉴가 바뀐 식당들 사이로
익숙한 미용실과
더 익숙한 옷가게가 보인다.
새로 생긴 건물 멋진 카페에서
꽤 비싼 샌드위치를 포장하고(오늘 저녁 당첨이다.)
아이스커피 두 모금을 먹었더니
옷가게 사장님에게 점심먹고 돌아왔다는 톡이 왔다.
오늘 아르바이트비용은 모두 옷사는데 들어갈듯 하다.
재취업 결정 이후 다시 옷에 대한 욕구가 스멀스멀 살아나는 중이다.
그렇다. 나는 자칭 패셔니스타였다.
본성을 잠시 감추었을 뿐
옷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완전히 놓치는 않았다.
서대문역을 중심으로 네 방향은
한쪽은 광화문으로 다른 한쪽은 서울역으로
또는 독립문으로 또는 충정로로 이어진다.
사거리가 주는 다양성과 특이성이 존재한다.
다음 아르바이트때는 다른 방향을 걸어보리라.
그러기위해서는 아르바이트 대상자에 선정되는것이 우선이다만.
(단골 옷가게 사장님과 스타일링에 대한
유쾌한 수다와 쇼핑을 마치고 이제서야 귀가중이다.
노후에 살고 싶은 곳 1순위는 아직도 사직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