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양이 설이야 늙지마라

함께 늙어가는 동지가 안타깝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더위에 정신줄을 잠깐 놓은 것인지

점검하고 지적질해줄 아들 녀석이 없어서 마음이 해이해진것인지

아니면 재취업이 되어서 긴장이 풀린 것인지

물론 복합적인 이유이겠지만

어제 저녁에는 설거지를 치는데

주방 세제가 똑 떨어졌고 수세미는 늘어졌고

나의 고양이 설이 간식인 멸치가 마지막 한줌밖에 안남았고

주방 여기저기 기름 얼룩이 보였다.

살림이란 잘해야 본전이지 아니면 표시가 이곳 저곳에서 난다.

주중 혼자 대강 먹고 대강 사는 표시가 한번에 눈에 띈 것이다.


요 며칠 기력이 통 나지 않는다.

더위를 먹어서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내가 판단한 제일 큰 이유는 브런치에서 내 글을 읽어주시던

구독자는 아니지만 가장 먼저 라이킷을 해주시던 단골분들이 빠져 나간

느낌이랄까 그것이 제일 큰 이유인 듯도 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들의 글을 모두 구독처리를 했어야는데

나의 게으름과 무지를 탓하고 있다.

이제라도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최선을 다해야겠다. 항상 이렇게 뒷북을 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당연한것이 아니었다는 그 깨달음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동네 입구 작은 국밥집을 하는데

장사는 그다지 잘 되지 않아도

늘상 지나가다 반갑게 인사해주고 격려해주던 이웃들이 한꺼번에 인사도 없이 이사를 가버린 그런 느낌이랄까?

여하튼 그래서 힘이 나지 않는 이번 주였다.


그런데 어제 저녁. 주방세제가 똑 떨어져 힘겹게 설거지를 치고 나서

(주문을 넣었는데 내일 배송이란다.

하필 고기를 먹었어서 더더욱 설거지가 힘들었다.

주방세제에게 감사한다.

이렇게 없어져야만 고마움을 아는 일들의 반복이다. 바보 아니냐?)

습관처럼 프로야구를 틀어놓은 채 거실 바닥에 힘없이 누워있는데

옆에 누워있는 나의 고양이 설이가 앞발을 들고 왠지 모르게 나를 부른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요새 더위를 타는지 설이도 마르고 눈이 슬프고

더욱 중요한 것은 눈 주위가 많이 늙었다.

안경을 벗으니 세세히 잘 보인다.

나는 매일 보니 잘 모르지만

가끔씩 사진을 찍어 막내 동생에게 보내주면

첫 마디가 <설이. 늙었다.> 이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설이. 이쁘다> 였는데.

나 못지않게 설이를 이뻐해서 카톡 프사에 곧잘 올려주는 막내이므로

(오늘 대문 사진은 내가 보낸 사진을 카톡 프사로

올린 동생 카톡을 캡쳐한 것이다.)

설이의 늙음을 나만큼 안타까워한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만

가끔 보는 막내 눈이 아마 맞을 것이다.

출근을 할때는 아침에는 바빠서 퇴근후에는 힘들어서

그렇게 많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었다. 고양이 설이와...

그런데 지금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의 분신과도 같이 함께이다.

반려 동물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백번 이해하고

설이마저도 없는 나의 삶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만

나와 함께 설이도 하루가 다르게 늙어간다.

조금은 천천이 늙어갔으면 하는데 말이다.

단위를 가르치는데 교과서 예로 고양이 평균 수명이 나왔더라.

15년이라 한다.

설이는 6년 나와함께 했다.

그렇다면 15 : 80 = 6 : X 라고

비례식을 세워서 평균수명 80살의 사람과 비교하면

현재 32살의 사람인 셈인데

그렇다면 한창 나이인데 왜 그렇게 늙어보이는 것이냐?

마음이 안타깝고 속상하고 눈물나서 열빙어 특식을 주문해두었다. 역시 내일 온댄다.

맛난 것이라도 많이 먹이자 싶다.

그런데 고양이 설이는 아마도 자신이 주인님이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아들 녀석이 집에 없어서

애정 결핍 때문에 기운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나도 조금은 그럴지도 모른다.


어제 오랜만에 아들 녀석이 집에 와서 자고 있다.

오늘부터 주말까지 강원도 출장이라 캐리어에 짐도 쳉기고

차로 나와 같이 출근하고 그 차를 내가 다시 가져와야 하는 일이 아침 미션이다.

오랜만에 아들 녀석 아침으로 계란 넣고 설탕 살살뿌린 토스트를 준비하고

얼음 넣은 아이스커피는 텀블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따가 기억이 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까먹고 그냥 출발하면 머리 몇 번 쥐어박으면 되는거지 뭐 싶다.

그 옆 나의 고양이 설이가

오빠 방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체크하면서

식빵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언제라도 오빠가 나오면 달려갈 자세이다.

그런 아들 녀석은 우리 둘의 바램을 모른채 방에서 톡을 날린다.

<8시 출발하자고.>

나와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나도 설이도 참 좋을텐데 말이다.

나의 고양이 설이야.

우리 함께 저속 노화해보자꾸나.

잘 관리하고 살아야 너랑 내가 제일 좋아라하는 아들이자 오빠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단다.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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