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드라이빙이 멋있기는 개뿔.

나는 많이 돌아가더라도 직진이 좋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몇 년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새벽 골프 라운딩 날이다.

한참 골프에 빠져있을때는 새벽 세시 출발이래도 감지덕지하면서

마냥 설레이면서 골프치러 나서기도 했었건만

이제는 그만한 열정도 실력도 없고 체력도 없어서

1년에 몇 번 가끔만 나가니

골프를 친다고 할 수도 안친다고 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이다.

그런데 오늘 이 더운 날 새벽 라운딩이 있다.

더워서 새벽인 것은 다행일 수도 있다만 5시 55분 티오프이다.

집에서 한시간 십오분은 족히 걸리는 곳이다.

새벽이니 길은 안막힐 것이다라고 다소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네시 십오분 출발하면서 휴대폰과 자동차

두 개의 내비게이션을 각각 동작시켜두고

일출의 멋진 광경을 살펴보며 새벽 드라이빙을 해보자

그렇게 긍정적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 이십분만에 내 머릿속은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었고

그 근본은 출발할 때 좌회전을 할 것인가

우회전을 할 것인가

최초의 그 순간에 결정되었던 결과였다.

좌회전을 하면 강서, 양천쪽을 거쳐서 파주로

우회전을 하면 도봉, 의정부쪽을 거쳐서 파주로 가게 된다.

파주 지역을 간 그 사이의 경험으로는 대부분 좌회전으로 안내를 해주더라. 내비언니가...

그런데 오늘은 새벽이어서 그랬는지 오른쪽으로 안내를 한다.

어쩔까하다가 실시간 교통 데이터를 반영하는 AI 내비언니를 믿어보기로 한다.

그것이 오늘의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항상 선택에는 결과가 따른다.


새벽이라 차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맞았다만

도봉과 의정부를 거쳐서 양주와 파주쪽으로 가는

그 길은 큰 대로로 쭉 가는 그런 길이 아니었다.

오른쪽으로 가다가 다시 왼쪽으로

그러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한번에 직진으로 2Km 이상 가는 길이라고는 없는

내비언니의 수다가 끊이지 않는 길이었다.

게다가 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은 왜 그리도 많은지

어린이들은 다 자고 있을 시간인 새벽 5시에도

시속 30km 빠르기를 지켜야 한다니 참으로 요상한 일이다만 그 구간이 계속 이어진다.

(어린이 보호구역이 있는 것은 인정한다만

방학이나 새벽과 저녁 시간에는 유동적으로 속도 변화가 가능하게 시스템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나라 프로그래밍 실력으로는 충분할 것 같은데...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아마 많을 것이다.)

이리 저리 악조건으로 점점 라운딩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직 골프장은 멀었다.

점점 초조해진다.

이러다가는 제 시간에 도착을 못하겠다 싶으니

해가 뜨는지 주변 풍경이 멋진지 이딴 것들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아침도 못먹은 배가 고픈 것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골프장을 가다가 이렇게 늦어져서 걱정한 적은

두 번째이다.

한번은 명절 전날이었는데 엄청 막혀서 결국 포기하고 돈만 낸 적이 있다.


이렇게 마음을 졸이고 아침도 못먹고 간신히 도착해서

옷만 갈아입고 화장실 한번 갔다가 정신없이 공을 치기 시작했으니 공이 맞을 리가 없다.

늘상 쓰던 높이의 티도 못찾겠고

여름철 골프 장갑도 어디있는지 모르겠고

4월에 한번 나오고 두 달만에 나왔으니

코스 매니지먼트라는 것은 도통 생각도 나지 않고

여하튼 나는 그렇게 다시 백순이로 복귀했다.(백순이라는 것은 100타 이상을 치는 사람을 의미한다.)

골프가 안되는 101가지 이유 중 열가지 쯤이 해당된 날이다.

그리고는 맹세했다. 다시는 새벽 라운딩을 하지 않겠다고. 이제 그럴 나이는 아니라고.

새벽 드라이빙이 멋있기는 개뿔이다.

모르는 길이라 낯설고 무섭고 두렵고

아침은 못먹고 정신은 안차려지고

멍하니 이쁜 사진도 못찍고

따라서 공은 안맞고 엉망진창이었다.

어찌저찌 라운딩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도 내비언니는 새벽의 그 길로 나를 안내한다.

이 길이 이런 길이었구나 싶다.

그런데 다시는 이 길을 선택하지는 않으련다.

너무 많이 돌고 돌아 가는 길이다.

내 인생과 너무 닮았다.

나는 그냥 오랫동안 직진하는 그 길이 많이 돌아가는 길이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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