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편(아니다. 그때 이름은 국민학교이다.)
라이벌이라는 단어는 가끔은
정신이 바짝 들게도 하고
혈압을 높여주기도 하고
가슴을 답답하게도 해준다만
나는 라이벌이 인생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애 라이벌들을 정리해본다.
오늘은 초등학교편이다. (아니다. 그때 이름은 국민학교였다.)
라이벌끼리의 야구 중계를 틀어놓고 말이다.
내 인생 기억나는 최초의 라이벌은 김모군이다.
남학생이고 4,5학년 나와 같은 반이였다.
그때 왜 그랬는지 4학년에 같은 반을 그대로 5학년때도 같은 반으로 진급을 시켰다.
너무 서로를 잘 안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었을 것이다.
그 때 그 김모군은 남자 1등이었고
나는 여자 1등이었으니
저절로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졌고
김모군은 부자였고 나는 평범한 집이였으므로
경제적으로는 비교가 되지 않았을터인데
공부는 악착같은 내가 더 나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씩 학교에 오던 김모군 어머님의 눈초리에서
나는 위압감도 조금은 느꼈었고(대구 사투리가 센 키가 큰 어머니셨다.)
그랬지만 교실에서 김모군과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그렇다고 좋아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서로가 아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그리고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라이벌이자 동료였는데
5학년말쯤 그 당시 부촌인 여의도로 이사를 갔고
이사를 가면서 김모군의 어머니는 안해도 될 말을 나에게 하고 갔다.
<너 때문에 1등 한번 못하고 간다.>
어린 나에게 그 이야기는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이야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 김모군에게 연락하려면 충분히 할 수는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래도 4,5학년 그 중요한 시기에(공부 내용이 갑자기 어려워진다. 예나 지금이나)
그 녀석이 있어서 지고 싶지는 않아서 열공했음은 인정한다.
6학년때 전학 온 손모양은 아우라가 남달랐다.
목소리는 중저음으로 깔렸고 얼굴만 봐도 아는 것이 엄청 많아보이는
그러면서도 무언가 비밀을 간직한 것 같은 그 친구는 전학 온지 한달만에
6년동안 그곳을 굳건하게 지키던 나를 넘어서서 학생회장에 선출되었다.
이변이라고 다들 수군거렸다.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동네 어머니들도 말이다.
우리 엄마는 며칠간 몹시 기분이 나빠있었다. 분명하게 기억난다.
그런데 나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학생회장에서
나를 밀어낸 손모양이 그리 밉지 않았다.
그동안 못봤던 캐릭터여서 궁금했고
그 친구가 사용하는 수준 높은 용어가 놀라웠고
지금 생각하면 두 번째 인생을 사는 듯 성숙한 친구였다고 그때도 느꼈었다.
라이벌 구도가 저절로 형성되었지만
사실 우리 둘은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도 그렇게 친하지도 않게
학생회장과 부회장으로 1년을 보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불편한 일이 졸업식을 앞두고 발생한다.
나는 아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졸업식 답사를 내가 읽기로 결정되었다는 거다.
학생회장이 읽는 것이 대부분인데 말이다.
물론 5학년때 졸업식 송사는 내가 읽었었다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고 나는 통보를 받고 연습을 했을 뿐이다만
졸업식에 손모양과 부모님께서는 불편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자리를 빌어서 내 뜻이 절대 아니었음을 밝혀둔다.
선생님들 회의에서 그렇게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만 들었고
우리 엄마는 좋아라하시며 나에게 졸업식 날 입을 새빨간 자켓을 사주셨었다.
아직도 그 옷의 디자인과 색이 기억날 정도로 강렬했다.
그 뒤로 중학교에 가서도 손모양과 나와의 라이벌 인연은 이어졌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그러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 친구가 되었고
대학도 동창, 교사도 같이 그리고 퇴직도 비슷하게 하는
이제는 퇴직 후 아르바이트 및 자녀들 혼사 걱정을 함께 나누는 친구로 남았다.
라이벌 이야기가 서로 험담하고 뒤에서 흉보고 비난하는 그런 막장 드라마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늘 생각난 김모군과 손모양은 나의 발전에 얼마간의 지분이 분명하다.
새삼 고맙다. 훈훈한 마무리이다.
그들의 기억에 나도 이렇게 남아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