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야기 아홉 번째

옷은 기억과 추억과 함께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정년퇴직 후 옷에 대한 관심이 0에 수렴하다가

2학기 취업을 계기로 조금씩 다시 살아나서

이제는 거의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고 보여진다.

이리 저리 걸어다니다가 이쁘다 싶은

내게 어울리겠다 싶은 옷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금요일 북촌에서 옛 제자들과 맛난 것을 먹을때도

여름 웃옷 두 개가 눈에 들어왔고

어제 수원역에서 시간을 맞추느라 옆 백화점을 배회할때도 살랑살랑 원피스 두 개가 눈에 들어왔었다.

물론 옷에 대한 감각은 다시 살아났지만

아직 구매욕까지 동반하여 높아진 것은 아닌 것 같아보인다만...


나는 옷을 살 때 이분법을 적용했었다.

그 척도는 단순하게 출근할 때 입고 갈 수 있는 옷인가 아닌가였다.

출근이 되지 않는 옷은 거의 구매하지 않았느데

작은 예외가 있는데 여름철 집안에서 입을 옷의 경우였다.

대부분 집에서는 낡아져 후줄그레해진 옷들은 주로 입는다만

(다들 그런 것은 아닌가보다. 집에서도 잘 갖춰입는 분들도 있다.)

겨울은 그것이 가능하고 츄리닝복 바지를 입고 지내면 되는데

여름에는 마냥 그렇게 지낼 수는 없는 계절적 특이성이 있다.

땀이 많이 나고(나는 별로 땀이 안나는 체질인데도 그렇다.)

냄새도 많이 나고(땀과 습기와의 합작품이라 야라꾸리한 이상한 냄새가 난다.)

습하고 더워서 옷이 피부를 휘감는 느낌이 불쾌하기 그지 없다.

실내복과 잠옷을 구분하여 입는 사람들은 더더욱 민감할 것이다.

따라서 집에서 실내복으로 입는 산뜻한 옷이 꼭 필요하다.

물론 외출복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스타일이다.


몇 해전부터 즐겨 입는 여름 실내복의 대표적인

두 세트 옷이 있다. 번갈아서 빨아입는다.

하나는 까실까실하고 시원한 까만 줄무늬이고(이것은 무채색을 선호하는 내 스타일이 맞다.)

하나는 몸에 휘둘리는 여러 가지 색깔의 추상화무늬이다.(이 옷이 오늘 글의 주제이다.)

물론 둘 다 민소매이고 짧은 반바지 형태이다.

오늘 그 두 세트를 모두 세탁을 하면서 문득 내가

이 옷들을 언제 어디서 구입했을까가 궁금해졌다.

특히 추상화무늬 그 옷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내가 직접 골랐을 확률이 0%이다.

꽤 오래된 옷인데 어디서 왜 샀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 옷을 선물 받았을리도 없는데 말이다.

누가 이런 촌스런 옷을 선물로 하겠냐.

오전 내내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면서 생각을 해보아도 캄캄할 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요즈음 이렇게 어떤 특정한 물건에 관련된 일이

아무런 맥락도 관련성도 장소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같은 기억의 암흑인 부분이 나타난다.

옷만 봐도 어느집에서 어떤 기분으로 왜 샀는지가 명료하게 기억났던 나의 과거가 그립기만 하다.

그리고 그 옷을 처음 입던 날과 입으면서 일어났던 중요한 에피소드까지 몽땅 다 기억해내던 꽤 총명했던 나의 두뇌가 그리울 뿐이다.

사실 내가 옷을 구입하는 곳이 거의 정해져있기는 하다만

(광화문 단골 옷집이나 부산 모처 등이다.)

여름철 집안에서의 단짝인 아무리 봐도 내가 산 것 같지 않은

여러 가지 색과 모양이 합쳐져서 이상한 무명화가 추상화의 한 단면 같은 그 옷은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는데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가 하나도 없다.

아마도 올해가 지나면 너무 낡아서 버려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만...

나에게 옷은 추억과 기억의 열쇠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래서 옷버리기가

마냥 단순하게 쉽지만은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냉장고바지라 불리는 여름 바지를 입어봤는데

냉장고까지는 아니지만 시원하긴 하다.

역시 내가 산것은 아니고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다.

누군지는 밝히기는 조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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