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무언가를 한 것도 안한 것도 아닌 하루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 늦게까지 사방을 돌아다닌 아르바이트 후유증으로 다소 늦게 일어났다.

아침은 어제 저녁으로 먹으려다가 두 숟가락 먹다 못먹은 물만은 밥을 다시 따뜻한 물을 더 넣어서

밑반찬이랑 먹고(이건 완전히 한 끼 때운거다. 먹은게 아니다.)

남편과 아들 맞이 대청소를 하고 남편의 주문 메뉴를 준비한다.

예전에는 생전 뭐 먹고 싶다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요새는 구체적으로 먹고 싶은 것을 문자로 보낸다.

그래도 항암중에 먹고 싶은게 있다는 것이 어디냐 감사한다.

오늘은 오이냉국에 부추전 그리고 추어탕과 감자샐러드라고 주문 가짓수도 엄청 늘었다.

아뿔싸. 감자샐러드를 며칠 전에 해먹어서 감자가 똑 떨어졌는데 어쩐담.

추어탕은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음식인 걸 남편은 알 리가 없다.

할 수 없이 추어탕과 감자샐러드는 숨겨진 비밀 맛집을 활용하기로 한다.


그 숨겨진 비밀 맛집은 사실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를 걸어가야만 한다.

더 더워지거나 오늘 비소식이 있는데 더워지거나 비가 내리기 전에 빨리 다녀오기로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감자 샐러드가 두 종류이다.

감자로만 한 샐러드와 달걀과 감자를 함께 섞은 샐러드이다.

단백질이 필요한 남편이 어느 것을 더 좋아라 할지 몰라서 작은 사이즈로 두 개 샀다.


돌아오는 길에 안 움직이고 누워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봐서 기분이 안좋았다.

저렇게 누워있다는 것은 아프거나 다쳤거나 아니면 잠에 취한 것인데 잔다고 보기에는 미동도 없다.

어디에 신고라도 해야하나 싶은데 어디로 해야할지는 모르겠다.

우리집 고양이 설이가 저절로 생각나는데 사이즈도 딱 비슷하다.

길 고양이 문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한데 엄청 안되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집에 돌아오니 더위가 그만한 날씨였는데도 땀이 꽤 났더라.

샤워할 겸 화장실 청소에 돌입한다.

욕조도 변기도 바닥도 열심히 닦았더니 샤워한 것이 무색하게 다시 땀이 난다.

그래도 환자가 사용할 곳이니 더더욱 세심하게 청소를 해본다.

남편이 사용하고 나면 미세하게 아픈 사람 약 냄새가 난다.

안타깝고 슬프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월요일 강의 준비를 하다가 잠시 누웠다가

또 강의 준비를 하다가 누웠다가를 반복했다.


7시반 도착 예정이라는 남편과 8시반 도착 예정이라는 아들 녀석을 기다리는 중이다.

비가 엄청 쏟아진다는 울산 지역 소식에 우울하고(오늘 불꽃 야구 직관 시합 중이었는데 중단되었다고 한다.)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설이 모습에 아까 그 고양이가 다시 생각나고

에어컨은 틀었다 껐다를 반복하고 있다.

뭔가 임팩트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던 오늘 하루.

매일 매일이 버라이어티하고 즐거울 수는 없는 것이지만

다음 주가 바쁜 한 주이니 체력도 보충하고 머리 정리를 하면서 잘 쉬었다고 생각하련다.

딱히 무언가를 한 것도 안한 것도 아닌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아무런 큰 일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남편은 와서 저녁을 먹었고 아들 픽업 대기중이다.

아직도 내가 이고 지고 나아가야 할 일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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