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이벌 연대기 4.

사회생활편

by 태생적 오지라퍼

2월 25일 대학 졸업식날 발령을 받고

3월 1일자 출근이었으

나의 사회생활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을 알고 시작한 게 아니었으니

기억나는 나의 좋았던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그들과 닮아가려고 최선을 다하는 시간들이었다만 물론 알지 못하는 실수가 엄청 많았을 것이다.

따라서 초임때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신 선배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첫 해 제자들에게 감사하다.

초보 교사의 좌충우돌에 함께 해주었고 지지하고 격려해주었다.

지금도 물론 그렇다.


사회생활에서의 라이벌을 생각해보다보니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내가 그리 남들의 시선에 민감한 편은 아닌가보다.

첫 학교에서 여자 발령동기들이 5명 정도 있었는데

미모와 특성상 그들이 라이벌이자 선의의 경쟁자이자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동기들이었고

방학을 맞아 함께 여행하고 일상과 수다를 공유하는 친구가 되었었다만

지금은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연락이 되지는 않는다.

뛰어난 미모의 윤리샘, 똑똑이 가정샘, 야무진 음악샘, 같은 발령동기와 결혼할때까지 깜쪽같이 비밀 연애를 한 영어샘, 그리고 두 번째 생을 사는 것처엄 여유로웠던 미술샘. 다들 잘 계시지요?

교사생활에서 라이벌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이유가 공립학교에 있는 교사 전보 시스템 때문일지도 모른다.

익숙해질만하고 나태해질만하면 학교를 옮기니 다시 긴장하고 적응하는 시간들의 연속이었고

그 사이에 여러 이유로 라이벌이 형성되었다가도

전보 이동이 일어나 누군가가 학교를 옮기면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신기한 리세팅이 된다.

나는 사립학교였다면 지치고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하곤 했다.

물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달되기는 한다.

교사 세계도 참으로 좁다. 같은 교육청 관내에서는.


담임 역할을 누가 누가 더 잘하나

동학년 선생님들끼리는 은근히 비교 대상이 되기 마련이었고(옆반은 뭐한다는데 라는 말이 스트레스가 되긴한다.)

동일 교과 선생님들은 누가 누가 더 잘 가르치나가

매 시험때마다 비교의 대상이 안될 수 없는 환경이다.

물론 학원 업계처럼 수강생수로 줄세우기를 하지는 않는다만.

큰 학교에서는 한 학년을 수업하는 과학교사만 4명이 될 때도 있다.

늘상 비교 당하고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힘들기도 하고 그래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더 힘을 내기도 했다.

소규모 학교로 오기 전에는 당연했던 그 일들이

내가 한 학년을 오롯이 담당하는 소규모 학교로 오니까

그리고 나이가 먹을대로 먹으니까

이제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알려주고 도와주어야하는 대상으로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다.

고경력의 원로교사가 되었다는 뜻이다.

라이벌의 등장은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성장하게 만들어주는데(물론 약간의 정신적인 피로감도 동반한다,)

지금 현재 나의 라이벌은 누구일까 생각해보니 딱히 없다.

그러나 2학기 다시 새로운 곳에서의 사회생활이 시작되면 아마도 누군가가 짠하고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조금씩은 성장하는 나를 만나기를 희망한다.

그 곳에서의 나는 신입일 뿐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동료이자 라이벌이 되는 운명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 세상의 엄마와 아내들은 끊임없이 다른 집의 엄마와 아내들과 비교당하게 된다.

물론 남편이라는 자리도 마찬가지고 자식이라는 위치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리집 고양이 설이가 유일무이하게 나를 바라봐주듯이

(물론 나 아니고 아들 바라기이지만. 어제 오랜만에 만나 종이 하나 접어 테이프로 접은 종이공 하나로 둘이서 어찌 그리 기분 좋게 놀던지 그것 바라보는 내가 다 흐뭇했다.)

온전히 나의 아들과 남편을 바라봐주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남편이 아프고 나서야 그간의 속상했던 마음이 미안함으로 바뀐다.

오늘 또 항암 주사를 맞는 그 힘든 길을 막 나섰다.

이제 암과 싸워보겠다는 투쟁 정신이 많이도 약해졌고 너무 많이 말랐다.

발톱은 다 빠지고 배에는 여전히 복수가 있어 약간은 볼록하다.

누가봐도 아픈 사람의 모양이다.

아들도 엄청 크고 나서야(이제 배가 나오고 늙었다.) 예민했던 나 때문에 힘들었을 아들 녀석이 돌아봐진다.

나의 사랑과 관심이 그 녀석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했을지 모른다는 것을 이제서야 인정하게 된다.

많지도 않은 단 세명의 가족인데

이렇게 많은 오랜 세월을 지나서야

그리고 한 명이 많이 아파서야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다니 참 바보다.

오늘은 오랜만에 클래식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는데 마음이 아련하기만 하다.

음악 때문만은 아닐게다.

어렵고 힘든 하루가 막 시작되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반영하듯 오타가 많았다.

오타 수정후 차분히 대기중이다.

오늘은 친정부모님 이천호국원 이장 날자를 결정하는 날이다.

아홉시에 시스템에 접속해야 한다.

시스템에는 벌써 들어왔는데 새로고침을 잘해야

내가 희망하는 날자를 픽할수 있다.

라이벌이 어마 무시하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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