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순탄하게 끝나지는 않는다.

간부의 삶이란 책임이 따른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침 일찍 동부간선도로도 잘 진입해서

한번도 오류나지 않고 내비언니 추천대로 잘 따라서

오늘의 소독 아르바이트 아파트를 잘 찾아왔고

호박잎쌈밥 아침도 차에서 먹었고(남편 몫은 차려두고 나왔다.)

브런치 아침 글도 하나 작성했고

주변을 산책하면서 일찍 문을 열은 카페에서 냉율무차도 하나 사서 마셨고

(맛이 괜찮더라. 미숫가루보다는 연하고 덜 녹진거렸다.)

오늘도 초등학교는 여름 방학이 아닌 듯 등교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그 어린이들을 위해서 건널목 교통 봉사를 하는 노란색 조끼의 어르신들도 뵙고

(오년 뒤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건강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당당하게 네 번째 소독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뭐든 네 번째 쯤 되면 자신감이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도가 빨리 빨리 나가지가 않는다.

오늘은 모두 평수가 크고(그러면 소독약을 분사할 공간이 점점 더 늘어난다.)

게다가 앞 뒤 베란다에는 모두 막힘통을 씌워 두어서 시간이 두배 걸리기도 했고

(그 통을 열어서 소독을 하고 일일이 다시 닫으니 시간이 걸린다.)

지난 주 나의 소독 대상 가구가 너무 작았던 것을 알았는지

(어찌 알았을까나. 역시 총량의 법칙은 어디에서나 적용된다.)

오늘은 총 가구수의 50% 정도가 소독을 진행하는 대박 정기소독일이었다.

오전 내내 쉴 틈 없이 했는데도 주어진 대상의 반도 못했다.

보다 못해 팀장님이 내 몫을 가져가서 해주신다.

1인분의 역할을 못하는 듯 아직 신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럿이 함께하는 점심은 맛나지만 너무 덥고 힘드니 식욕은 모두가 없다.

나는 밥을 먹어야 디저트로 빵이 들어가는 스타일이고

친구는 빵을 먹으면 밥 생각이 난다한다.

오늘 내 점심 도시락은 나의 단골 반찬집의 김치볶음밥이고

남편은 새우볶음밥을 챙겨두고 왔다.

달걀국과 함께 먹으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걱정이 되기는 한다.

지난번 오이지무침의 대가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동료가

오늘은 어머니표 꽈리고추무침을 가지고 왔다.

오늘 것도 최고이다.

찬 밥 물 말아서 오이지무침과 꽈리고추무침만 가지고도 밥 한 공기는 뚝딱일 듯 하다.

전문 반찬집보다도 더욱 맛갈나다.

팔아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오후에도 정신없이 소독을 진행하고

(얼마나 정신없이 했는지 권총처럼 손잡이를 쥐는 둘째 손가락 부위가 부어서 아프고

오른쪽 엄지발가락 위치의 양말이 빵꾸가 난 것을 한참 지나서야 발견했다.)

거의 마무리가 될 때쯤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발생한다.

마지막 동 라인에서 이미 오늘 소독을 했다는 집이 3곳이나 발생한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이 동은 내 담당인데 누가 오늘 소독을 했을까나?

나는 분신술을 쓰지 못한다.

도대체 어떤 착오인지 도저히 알수가 없으나

오늘 소독을 했다고 안해도 된다니 어쩌겠나.

해프닝이라고 생각하고 마무리했다.

그나마 잘 마무리했다 생각하고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두 통의 전화가 온다.

하나는 내가 방문해서 벨을 눌렀으나 반응이 없던 곳인데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오냐고 한다.

어머나. 이런 낭패가 다 있나.

고마운 팀장님이 해결해주신다 한다.

또 한 통을 전화는 내 담당은 아닌데 나에게 전화를 해서 왜 소독을 안해주냐고 한다.

어머나. 이건 또 어쩌나. 역시 마무리는 팀장님이다.

팀장이라는 위치가 그런 것이다.

모든 일의 마무리까지가 그의 몫이 된다.

팀장이라고 자신이 일을 덜하는 그런 사람은 이상하다.

학교에서도 부장교사가 되면 일을 다 후배에게 미루고 안하는 그런 사람도 간혹 있다.

간부급이 더 일을 많이 하는게 맞다.

특히 마무리는 간부급이 처리하는게 맞다.

오늘 팀장님은 모든 마무리를 처리하고 다른 사람보다 삼십분은 늦게 퇴근하셨을 듯 하다.

다음 번 만나는 날에는 맛난 간식을 가지고 가야하겠다.

그 전화 두 통을 받느라 나는 집에 오는 길 동부간선도로를 거꾸로 탔다. 의정부로 갈뻔.


오늘 고생한다고 주민들이 주신 박카스 2병, 두유 1병, 캔 커피 1병은 잘 챙겨왔는데

옥수수 삶아주신 것 3개 정도를 어느 집인가 두고 왔다.

방금 삶은 따뜻하고 맛나 보이는 것이었는데... 아쉽기만 하다.

그 집 가족이 발견해서 맛나게 드셨으면 좋겠다.

하루도 순탄하게 아무일도 없이 지나가는 날은 없다.

그런 날은 재미없다고 툴툴대는 브런치글을 쓸 것이다. 아마도.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저 사진은 불암산 노두 뷰이다. 과학 교과서에 종종 등장한다. 지질학적인 이슈가 있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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