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같은 사람이다.

덥고 더운 날들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는 아파트 방문 소독 아르바이트의 날이었고

오늘은 과학교육자이자 연구자의 역할로 학회를 방문한 날이다.

두 역할이 하는 일은 조금은 다를지 모르지만

(하나는 몸을 주로 쓰고 하나는 머리를 주로 쓴다.)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같은 사람이다.

각각 다른 역할이 주어질 뿐 수행하는 사람은 똑같고

그 두 가지 일이 목적과 수행 방법은 다를지라도

똑같이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일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믿으며

이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다는 말도 신봉한다.

소독 아르바이트를 하며 배송 기사님들의 어려움에도 십분 공감한다.

그분들이 있어서 내 생활의 편리함이 보장되는 것이다.


오늘 오랜만에 학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을까 싶었다만

세상에나 추억의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박사과정 수업을 같이 들었던 후배들도

(거의 십 여년 만인데 나보러 왜 이렇게 말랐냐고 한다. 늙었다는 소리이다.)

서울대 파견 나왔던 시기에 연구실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도 보이고

(이제는 모두 중견 연구자가 되어 있다. 반갑기만 했다.)

내 나이 또래의 은퇴를 앞둔 교수님들도 보였다.

(그들도 이제 많이 늙었더라. 나만 늙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들어가는 것은 대체로 공평하다.)

같은 전공을 하는 연구자들은 한때는 라이벌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제 동일 업종 종사자임에 틀림없다.


오랜만에 참석한 학회인데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20분 발표인데 PPT를 보고 줄줄줄 읽는 발표자가 있기도 하고(PPT 수준도 훨씬 높아진 것 같지는 않더라.)

AI를 주제로 한 발표와 워크숍의 비율이 가장 높지만 모두가 비슷비슷한 내용이라는 점도 조금은 놀랍고

발표를 듣다보니 그동안 잊어버렸던 논문에 대한 열정과 욕구가 스물스물 살아남도 느꼈다.

2학기 강의가 꽤 많아서 강의만 전담하고 논문 쓸 생각은 못했는데

몇 년 남지 않은 불꽃을 다시 태워봐야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긴 했다.

아직은 생각만 한 것이다.

꼭 쓰겠다는 각오까지는 안했다.


오늘 가장 기뻤던 일은 내가 가장 교사로서 즐거웠던 시기인 <미래학교>를 기억하는 후배님들을 만났었던 일이고(그 내용으로 작성한 논문이 있다는데 읽어봐야겠다.)

그동안의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점이고(듣기 좋으라고 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만)

가장 힘들었던 점은 그 넓고 넓은 뙤약볕의 S대를 돌아다닌 것이었다.

이왕 S대에 온 김에 내일 수업할 방과후 특강을 듣는 중학생들에게

서울대 기념품을 하나씩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것 하나씩을 가지고 새로운 목표를 정하게 해주고 싶었다.

고민끝에 교재로 프린트해주는 인쇄물을 넣어서 모아두는 파일철을 샀다.

귀한 여름방학 시간을 과학 공부에 쓰겠다는

장한 생각만으로도 그들은 선물을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는 너무 오랜만에 연구자로서의 열정을 불태웠는지

더위에 지쳐서인지 집에 와서는 거의 기절을 했다.

오늘 S대에서 마신 생수만 3병이다.

물 먹는 것을 별로 좋아라하지 않는 나에게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어제도 힘들었지만 오늘도 힘들었다.

몸과 마음은 함께 세트로 움직이는 것이 맞다.

어제도 더웠고 오늘도 더웠다.

세상에 이 날씨에 야구 연습하는 영상이 올라와있다.

80이 넘으신 감독님이 또 펑고를 치고 계신다.

<불꽃야구>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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