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자 되뇌여본다만.
네 번의 아파트 소독 아르바이트에서 가장 복병은 반려 동물이다.
아무리 인체에 해가 가지 않는 소독약이라고 해도
강아지나 고양이가 핥아먹는다면 좋을 리가 없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해가 없을지 모르지만
사이즈가 작은 생명체에게는 해가 없을리 없다.
그러므로 바퀴나 기타 벌레들이 죽는 것이지 아니면 그들이 왜 죽겠는가?
따라서 소독이 방문하는 경우 반려동물들이 그 소독약 살포하는 곳에 접근하지 못하게
문을 닫거나 막아주는 일이 꼭 필요하다.
나는 주의 사항을 꼭 안내드리고 문을 닫아두고 나오지만 혹시 놓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엄청 빠른 속도로 그것에 접근한다.
반려동물들은 냄새에 본능적으로 이끌리고 먹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대부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은 방문객을 좋아라 한다.
마구 짖기는 하지만 꼬리를 살랑살랑대며 심지어는 와서 안기려는 녀석들도 있다.
집에서 사랑받고 키워서인지 집을 지키는 명견에서 기쁨을 주는 재롱둥이로 역할을 변신한지 오래이다.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재빨리 숨는다. 자신만의 자리가 있다.
숨어서는 관심 있게 나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내 눈에 뜨이지 않을 뿐.
사실 고양이가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찾아볼 시간은 나에게는 없다.
한 집당 1분 30초 정도의 시간 이상이 소요되면 당일 할당 세대수를 다 커버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번 주 수요일 어느 집에는 반려토끼를 키우는 집이 있었다.
꽤 사이즈도 크고 풀도 많이 먹는 건강한 토끼였다.
토끼 눈을 보면 자꾸 토끼 눈으로 하는 안압 실험 이야기가 생각나서 슬프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점점 그 비율이 줄고는 있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 허가를 득하고 진행한다. 중고등학교에서의 해부 실습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필요성이 하나도 없다고 잘라서 이야기하기는 아직은 그렇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질병이 발견되고 신약이 만들어지며 그 효과를 실험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새로운 질병이 없고 신약이 없는 시대가 온다면 동물 실험과도 영원한 굿바이가 될터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직은 희박해보인다.
자꾸 자꾸 변종 질병이 생겨나니 말이다.
토끼는 눈이 커서 안과 관련 다양한 실험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이 있단다.
안압의 변화를 살펴보는 경우에 해당하는 듯 하다.
그런데 그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토끼 눈에 측정센서를 심어두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토끼에서 무한한 스트레스를 주게 되어
아무 실험도 안했는데 그냥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있다고 들었다.
제자 중 한 명이 의공학과 전자공학 관련 실험을 수행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토끼 눈이 그렇게 슬퍼보일 수가 없었다.
중학교에서 해부 실습을 할 때 붕어, 개구리, 조개, 오징어 등이 그 대상이었다.(나는 차마 닭은 못하겠더라.)
조개와 오징어는 늘상 요리로 먹던 것들이니 그렇다고 쳐도
개구리(특히 황소개구리)와 붕어와 금붕어는 순전히 실험용도로 본 것들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을까 싶은 순간들이다.
물론 나는 비건이 아니라 생선도 먹고 고기도 먹지만 한번쯤은 동물들의 삶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내 의지로 움직이는 동물과 그들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심.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과 그들이 느끼는 여러 변인들과의 투쟁.
나 못지않게 하루 하루를 열심히 버티고 있는 동물과 식물이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유지하는 방식이 있다.
고양이는 숨고 강아지는 꼬리치는 것이 바로 그 삶의 방식이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자 이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니냐고 알려줘봤자 소용이 없다.
다 다르다. 그들 나름대로의 확고한 매뉴얼이 있다.
질병에 대처하는 내 생각과 남편의 생각이 전혀 다른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