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어쩌면 사소한 것들이다.

가래와 날파리

by 태생적 오지라퍼

하루를 무사히 아무 일 없이 보낸 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는 잘 알고 있다.

정년퇴직 후 너무 심심하다고 그럴싸한 일이 없다고 이대로 그냥 늙어가는 일만 남은 것이냐고

브런치에 투정글을 올렸던 날들도 종종 있었으나

그것 또한 얼마나 오만 방자한 일이었던지를 실감하는 날들이다.

7월 들어 갑자기 많아진 아르바이트 때문이기도 하고

집에서 모든 일을 하고 있는 남편 때문이기도 하고

요 몇 해 전부터 여름 들어 축 쳐지는 나의 컨디션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것이 선행이고 어느 것이 후발이고

또 어느 것이 종속변인이고 어느 것이 독립변인인지는 알 수 없는 복합계의 현상이기는 하다.

지구 온난화가 나에게 미치는 중차대한 나비효과와

그 영향일 수도 있다.


바쁜 이번 주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은 목 속에 있는 가래 한 덩이이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에어컨 때문임이 거의 확실한

목 안에 약간의 부담감으로

혈압약 받으러 간 김에 목 진료도 보고(약간 부어있다 했다.)

주사도 맞고 약도 받아서 먹고 있는데 아직도

가래 한 덩이가 있다.

뱉어지지도 않고 떨어져 나오지도 않고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잔기침이 나게 한다.

병원 약에다가 가래 기침약 튜브도 하나씩 먹는데

내 목젖 부근을 사수하고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 가래 한 덩어리가 기침을 유발하고

약을 먹으니 소변이 자주 나와서 더더욱 밤에 자주 깨서 화장실을 가게 만들고

지하철 안에서 기침이 나올까봐 마스크를 끼게 만들고

목소리를 허스키하게 만들었으니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모임이 있는데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

더 크게 많이 아픈게 아니니 뭐라 짜증도 낼 수 없는

딱 그 수준인데

그래도 내 하루의 삶의 질이 그 가래로 인하여 떨어지는 것은 틀림없다.


요즈음 또 하나 나의 신경을 거슬리는 사소한 것은 잊어버릴만 하면 등장하는 날파리이다.

딱 한 마리씩 날아다니며 나를 신경질나게 한다.

삼시세끼 거의 집에서 먹는 남편 때문에 음식을 하는 양이 많아져서 일지 모른다만

그렇게 열심히 쓸고 닦고 하는데 가끔씩 날아다니는 날파리를 보면

나의 청소능력의 저하가 우려되기도 하고(앞으로 더 떨어질텐데)

그 날파리를 원샷원킬 하지 못하는 나의 민첩하지 못함에 슬프기도 하고(앞으로 더 느려질텐데)

날파리 한 마리를 동시에 쫓아다니는 나와

고양이 설이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일말의 동료 의식을 느끼기는 한다만...


그래도 기력이 최고조는 아니지만

(내가 이렇게 여름을 타는 사람인줄 60평생 몰랐었다.)

이만큼 컨디션인 것이 어디냐 그렇게 위안하면서

어제 날파리 한 마리를 박멸한 것이 어디냐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면서

오늘을 시작한다.

아침 기온은 지난 주말보다 0.5℃ 정도는 낮아진 것으로 체감되는데(측정값은 아니고 어림값이다.)

이 또한 다행 중의 다행이다.


오늘 대문 사진은 며칠전 용마산에서 아차산으로 야간 산행을 했다는 후배 지인이 보내준 사진이다.

멋지다. 사진도 멋지고 그것을 시도하는 후배도 멋지다.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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