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료를 공유한다는 그 멋진 일

내가 받아보니 그 멋짐을 잘 알겠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나는 잘 퍼주는 스타일이다.

엄마에게 자주 혼나기도 했다.

자기 것은 야무지게 못 챙기고 가지고 있는 것만 나눠준다고

실속은 없는 헛똑똑이라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나눠주고 사주는 것이 좋았었다.

뽐내는 기분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그 마음이 좋았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그러니 이것은 타고난 것이다.


교사가 되어서도 그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동학년 수업을 같이 하는 선생님들에게 내 수업자료를 기꺼이 공유했다.

교사 초창기 시절에는

컴퓨터도 없었을 시기이니 자료라고 해봤자

손으로 그리거나 오려서 만든 학습지가 다였고

(칠판에 그림 그리거나 판서하는 시간을 아껴보려고 만들었었다.)

반듯한 수업 자료 PPT도 없었고

오래된 괘도나 쓰던 그 때 그 시절이었는데도

나는 사부작 거리면서 수업안을 만들고 또 고치고 했었다.

물론 선배님들이 하지 않은 과학 실험을 하느라 낑낑대기도 했다.

함께 해주었던 그 시절의 제자 녀석들에게 고마움이 아직도 있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교과서에 나온 실험은 모두

다 수업에 해주려고 노력한다.

수업이 재밌다는 생각보다도 수업을 잘하고 싶다,

쉽게 이해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일게다.

그리고 나면 꼭 당시 선배 선생님들 중 누군가는

그 자료를 공유해달라 하셨었고

(물론 점잖게 이야기하셨었다.)

나는 흔쾌히 다 보여드리고 복사해드리고 나눠드리고 공개 수업도 여러 차례 했었다.

그런데 그 가져간 선생님이 아무것도 나에게 나눠 주시는 것은 없더라.

처음에는 조금 섭섭하기도 했었다만 괜찮다.

무언가 주셔도 내 스타일이 아니면 나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후로도 만난 수많은 선생님들 중에 나에게 자료를 달라고 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다.

아낌없이 드렸다.

파일로도 드리고 인쇄물로도 드리고.

그렇지만 내가 받은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괜찮다. 나는 교육청 사이트에서 더 수준높은 자료들을 공유받아서 사용했는데

그 분들은 그런 사이트가 있는 것도 모르셨으니...

도와드릴 수 있을때 도와줄 수 있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 분들은 못 느끼셨을 것이다.


어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오후 늦게서야

2학기부터 강의를 나갈 대학교의 그 강좌의

전임 교수님께서 보내준 메일을 열어보았다.

오전에 왔는데 놓친 것이다.

강의 계획서 업로드와 강의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통화를 어제 했었다.

살펴보니 그 사이에 본인이 하셨던 수업 자료를 몽땅 보내주신거다.

감동의 물결이 쏟아진다.

강의 수준도 멋지고 강의 맥락도 멋지다.

처음 보는(아직 못봤다.) 학생들과 처음 진행하는 강의라 막막함이 있었는데

이런 소중한 자료를 보내주다니...

내가 지금껏 많은 사람들에게 자료 공유한 복을 이제야 받나보다 싶다.

8월 3일까지 강의 계획안을 업로드해야 하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올릴 수 있다 싶고

보내주신 자료를 바탕으로 내 스타일을 가감하면

멋진 수업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다.

복은 착한 일을 할 때마다 즉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그렇다면 다들 착한 일을 많이 많이 할텐데...)

언젠가는 쌓여있던 그 복을 받는게 맞나보다.

잊을만할 때 돌아온다.

묘하게도 지치고 힘든 타이밍이다.

그래서 또 살만해지고 일어서게 되는것일지도 모른다.

어제 받은 큰 복으로 가장 힘든 첫 학기를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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