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

드라마가 자주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최선을 다하면 안될 것 같던 일도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격려문구이다만

사실 그 일이 진짜로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144경기를 하는 KBO에서도 1년에 몇 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통계는 안봤다만...

따라서 9회말 2아웃이라 하면 대세가 거의 결정된 절체절명의 시기임에 틀림없다.

그냥 지고 있는 상태에서의 9회말도 쫄리는데

이미 2아웃이 되었다면 나같은 쫄보는 그만 채널을 돌리거나 눈을 질끔 감거나 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포기가 빠른 편이다.


어제 그 9회말 2아웃에서 역전을 시켜서 이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야구를 보았다.

<불꽃야구>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승부는 더위에 지치고(정말 더운 날이었고 인조잔디구장이라 더더욱 더웠다.)

나이에 따른 체력 저하로 힘들고(누구 하나 쓰러져 실려가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수준 높은 강철 체력 10대 투수를 상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경기를 끌려가던차에

승리의 기쁨을 미리 느낀 고등학생들의 에러를 비집고 들어가서

진땀승과 꾸역승을 거둔 그 광경을 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몰려왔다.

밤 11시인데 말이다.


일단 내가 생각한 어제 승리의 요인은 작전이다.

물론 마지막 타자가 잘 친 것은 물론이다.

그 타자도 간절함이 있는 독립리그 올해 트라이아웃을 앞두고 있는 선수이다.

그런데 그 앞 타임의 작전이 돋보인다.

어찌 어찌 찬스를 잡고는 재빨리 결승점을 내는 주자를 발이 빠른 20대로 교체한다.

이것이 노련함이고 경험의 바탕으로 정립된 작전이다.

늙은이들은 빨리 달릴 수 없다.

빨리 달리려는 마음만 앞서서 넘어지거나 고꾸라지거나 햄스트링이 올라오는 사례가 빈번했다.

나도 체육대회 달리기 날 마음만 앞서서 고꾸라질뻔한 경험이 종종 있다.

결국 대주자로 교체된 젊은이의 달리기가 승부를 갈랐다.


그 다음으로는 간절함이다.

늙은이들이 그 잘 던지는 투수의 공을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계속 시도를 한다.

우리 투수도 이미 더위에 기력이 다했는데 이를 악물고 던지는 모습이 보이고

야수들이 숨을 헐떡이며 땀을 닦아내는 모습은 안쓰럽기만 하다.

그런데도 간절하게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그들은

끝내기 승리가 결정되자 언제 지쳤었냐는 듯 팔짝팔짝 뛰어오른다.

그리고는 모두가 하나가 되어 허그를 하고 격려를 한다.

그 뒤에서 묵묵히 박수를 쳐주는 부모님의 눈빛도 지나간다.

시합 내내 표정 변화가 없는 노감독님의 얼굴도 스쳐간다.

한숨과 환호가 절묘하게 한 프레임안에 담긴다.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가 따로 없다.

아마 아쉽게 진 고등학생들은 평생 야구하면서 기억에 남을 무언가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에는 그들이 끝내기 승리의 주인공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월요일 저녁은 <불꽃야구>에 온전히 나의 시간을 쓴다.

이렇게 흥분이 되고 기다려지고 본방이 끝나고 나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있다는 것이 나의 생활을 이렇게도 변화시켰다.

그 대신 화요일이 조금은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어제 그 시간에 잠이 들지 않았어서

오늘 갑자기 번개팅으로 나들이 계획도 잡게 되었다.

세상에는 9회말 2아웃도 있지만

1회초 시작 시점도 있는 법이다.

지금 나는 야구 경기로 본다면 어느 시점일까?

설마 9회말 2아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드라마는 매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순간 순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본다.

다들 그렇게 간절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게다.

지금 힘든 분들께 <불꽃야구> 어제 방송분 시청을 권해본다. 내 사심이 조금은 들어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루틴대로거나 혹은 아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