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팅으로 만든 꿈같은 피서 1

계곡이 주는 산뜻함은 참으로 오랫만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젯밤은 <불꽃야구> 9회말 2아웃 이후의 멋진 끝내기 승리에 도취되어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늦은 시간(11시면 나는 보통 자는 시간이다.)에 톡이 들어온다.

무슨 일일까 살펴보니

4명으로 구성된 미래학교 어벤저스팀에서 내일 갑자기 근교로 놀러가자는 내용이다.

2명은 퇴직을 했고 2명은 한창 바쁜 장학사님인데

내일 시간이 어떠냐고 멀지 않은 곳으로 하루 휴가를 보내자고 한다.

마침 퇴직한 2명은 머리 염색을 위해 시간을 비워두고 만나기로 한 날이었고

장학사님 2명은 월차를 사용한다고 한다.

염색은 재빨리 다른 날로 미루고 이 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가장 먼저 간 곳은 놀랍게도 가마솥닭볶음탕 맛집이다.

우리는 멀리 강릉을 방문해서 호텔에서 빙수를 먹고 돌아온 이력이 있을 정도로 맛집에 연연해하는 편이다.

그리고 사실 나는 요새 잘 먹지 못해서 무언가 힘을 낼 수 있는 영양식이 간절하던 차이다.

아침 10시에 오픈한다는 그 식당에서 우리는 닭볶음탕 육수에 끓인 라면도 먹고 닭볶음탕은 물론이고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준 볶음밥까지 싹싹 비우고

오늘 나들이에 대한 전투력을 확보하였다.

그 식당을 선택한 이유는 맛집이라는 것과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주변 산책길 데크가 있고 계곡으로 내려가서 발을 담글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어벤져스팀의 능력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자료 탐색과 전투적인 수행에는

모두 다 일가견이 있다.

이것보다 더 갑작스럽고 규모가 큰 일을 여러번 해본 경험이 다수이다.


얼마만에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것인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학생들을 인솔해서 관악산 지질답사를 갔다가

그 주변 계곡의 암석 관찰 과정 중

발을 계곡물을 담갔던 기억이 희미한데

족히 10여년은 전 이야기이다.

친정아버지는 계곡물에 발 담그고 주변 식당에서 백숙 드시는 것을 여름마다 한번씩은 하셨던 것 같고

(그 시대 최고로 뻔한 피서 시나리오였다.

계곡마다 쓰레기와 사람들로 몸살을 알았고 음주가무가 판을 쳤었다. 조금은 보기 싫었었다.)

아들 녀석이 어렸을 때는 여름 방학마다 한번씩은 가까운 계곡에 놀러갔던 것도 같은데

(송추 계곡쯤이었던 듯 하다만)

그 이후는 영 기억에 나지 않는다.

계곡물은 생각보다 시원했고(추울 정도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맑았고(돌아다니는 물고기는 못봤다만)

주변은 습하지 않고 바람도 불고 시원했고(얼마만의 쾌적함이냐)

아큐아슈즈를 신고 올걸

더 짧은 바지를 입었어야 하나 잠시 후회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나왔을 뿐인데

이렇게 다른 세상이 열리다니

이런 느낌 때문에 사람들이 피서를 가는 것인가 싶었다.

조금쯤 옷에 물이 튀어도 신발이 젖어도 개의치 않았다.

계곡의 힘이고 더위의 힘이다.


다음 행선지는 유명하다는 카페이다.

다양한 여름 식물과 조금은 오래된 디자인의 건물과 무엇보다도

눈을 들면 스위스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멋진 산뷰를 자랑하는 카페에서

옛날이야기와 현재이야기가 반쯤은 섞인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를 쏟아버린다.

역시 피서의 최고봉은 수다임에 틀림없다.

마치 어제도 만났던 사람들처럼 그간의 일들이 파노라마 수다로 이어진다.

옆 자리의 커플은 참으로 이상하다.

이곳까지 멋진 데이트를 나왔으면서도 각자 휴대폰만 보고 각자 사진만 찍는다.

그러려면 둘이 함께는 왜 있는 것이냐.

둘이 있어도 혼자 있을 때와 똑같은 스타일인 것을...

그들은 우리가 이상할 것이다.

한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호호 하하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몰상식하게 큰 소리를 내거나 크게 웃지는 않았다.

우리는 나름 스마트한 어벤져스이다.


다음 행선지는 카페 앞에 있는 양평 지역 큰 지도를 살펴보고 정하기로 한다.

다들 나이가드니 분단위의 세밀한 나들이 계획보다는

큰 계획만 있고 나머지는 가서 살펴보고 마음 내키는 쪽으로 결정하는 융통성이 발휘된다.

그런데 어느 곳을 갈 것인지를 정하는 일은 그리 쉽지는 않다.

꼭 가보고 싶었던 뮤지엄이 하나 있는데 하필 오늘이 휴일이다.

갑작스럽게 나들이를 결정했으니 그럴 수도 있고 다음 기회를 위해 하나쯤은 남겨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5분 정도의 탐색 시간동안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중 한 곳을 가보기로 한다.

오늘 처음 들어본 이름의 장소이다. 약간은 두려움이 있지만 용감하게 도전해보려 한다.

계곡은 시원했는데 자동차 안은 찜통이다.

그 비밀의 화원은 내일 아침에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미 시간이 늦었고 잠이 몰려오려 하고 있다.

그리고 선물같이 소중했던 시간들을 사진과 함께 천천이 돌아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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