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주는 평화로움에 잠시 빠졌다.
어제 피서를 함께 한 네 명은
어제를 선물 같은 하루, 이틀 같은 하루라고 칭하였다.
표현은 다를지 모르지만 의미하는 바는 같다.
내가 선정한 어제 행사의 피크는
계곡에 발담그기와 지금 적어보는 숲 산책이다.
아마 다들 그럴 것이다.
어디를 갈까 세 번째 장소를 고민하면서 지도를 보다가
눈에 들어온 곳은 이름도 내용도 모르는 곳이었다.
그냥 숲이라서 좋았다.
수목원이라는 명칭이 붙은 곳도 있었지만
수목원, 식물원에는 무언가 인위적인 조경의 느낌이 난다.
서후리숲. 그냥 숲이라고 네이밍한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우리의 약간은 무모한 도전은 옳았다.
운이 좋았다. 우리가 착하게 살았나보다.
올라가는 길은 차량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만한 도로이다.
당연히 평일이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숲인데 사람이 많을리가 없다.
정말 무언가가 있을까의 의심이 최대치가 되는 순간
골목길 모퉁이에 우리 어벤져스가 좋아라하는 노출 콘크리이트 디자인의 입구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사진의 알림 표지판이 보인다.
입구만 봐도 알겠다.
사유지인 산 하나를 인위적인 느낌은 최소로 하고
방문객들에게 자연과 만나게 해주려고 만든 곳임을 말이다.
그리고 그 주인의 디자인 감각이 대단함을 말이다. 우리랑 눈높이는 통했다.
돈이 없어 그렇지 보는 눈은 다락같이 높다.
마치 제주의 무슨 무슨 숲에 온 느낌과 비슷하다.
그런데 제주의 숲들은 사람들이 꽤 많다.
비밀의 숲이라고 해도 이름을 붙였다해도 결코 비밀스럽지 않다.
너무 많은 사람이 오고가니 말이다.
그런데 이곳은 비밀의 숲이 맞다.
우리가 오다가다 본 사람들은 총 네명.
우리까지 여덟 명이 그 산 하나를 독채 전세 낸 셈이다.
나무 냄새, 열매 냄새 그리고 우리가 힘껏 뿌린 모기퇴치제 냄새가 어우러져서 기분 좋은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산을 거닐다가 눈을 들어보면 하늘의 구름도 멋지고 건너편 산도 물론 푸르고 멋지다.
물론 땀은 나고 벌레의 움직임에 민감해지고
넘어지지 않으려 힘주어 걷긴했다만...
메타세콰이어도 자작나무도 측백나무도 적당하게 자연스럽게(그렇지만 물론 손이 많이 갔다는 것은 알아차릴만큼) 자그마하게 숲을 이루고 서로 친밀하게 공생하고 있다.
한 시간 정도의 서후리숲 산책은 우리에게 평온함을 주고 많은 사진을 남겨주었고(재방문 의사 있다.)
짧은 산행 뒤 들어간 산장같은 카페의 맛난 커피 한잔과
그 곳의 멋진 디자인은 한 때 미래학교 공간 리모델링을 담당했던 우리들의 옛날이 기억나게도 했다.
멋진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굳이 말을 안해도 다들 잘 알고 있다.
최종 행선지는 그 지역에서 소문난 막국수집이었다.
평소 같으면 줄을 서야하는 곳이나 평일에 브레이크타임이 막 끝난 시간이라 널널하다.
그렇게 세운 계획은 아니었지만 오늘의 일정은 딱딱 맞아떨어져서 더 기쁘다.
들기름 간장 막국수와 비빔 막국수 거기에다가 적당하게 얇은 감자전을 하나 먹고 나니
하루가 길고도 충만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과거의 힘들었던 영웅담들이 속출한다만.
(그 이야기를 다하려면 최소 하룻밤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
앞으로도 순탄하지만은 않은 날들이 우리 앞에 있을테고
아무리 어벤저스팀이라 해도 지치고 좌절할 날들도 분명 있을테지만
어제의 수다와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면 얼마간은 힘이 날 것이다.
피서란 그런 것이다.
더위와 일상과 일들에 지쳤을 때 내가 나에게 주는 짧은 휴식이다.
휴가란 그래서 소중한 것이고 일을 하다가 선물처럼 받는 잠깐의 시간들이라 더욱 더 감사한 것일게다.
어제 그 멋진 날에 든 비용은 1/n을 칼같이 처리하여 58,500원이 나왔다.
내가 밥을 살 기회는 아들 녀석의 결혼식밖에는 없을 듯 하다.
내가 느낀 체감 비용은 585,000원이다.
그만큼의 돈을 써도 아깝지 않은 하루. 그만큼 좋았다.
깊은 가을 멋지다고 추천받은 대구에 있는 사유원을 가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하루를 마감했다.
오늘은 대파, 양파, 마늘을 사고 반찬을 해야 하겠다.
감자전이나 해볼까 싶다.
어제 그 식당처럼 얇고 맛나게 부쳐지지는 않을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