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대로거나 혹은 아니거나

순서가 뒤바뀔 뿐 해야 할 일은 비슷하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루틴대로 흘러가는 일상은 평화롭지만 지루하기도 하고

안온하지만 나태해지기도 하고

어제와 비슷하여 헷갈리기도 하지만 마음은 안정된다.

루틴대로 되지 않는 특별한 날은 그 전날부터 마음이 콩닥대기도 하고

걱정거리가 한 무더기 어깨위에 얹혀지기도 하고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사사삭 일처리를 해내는

내 역량에 가끔은 감동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아주 가끔은 루틴대로가 아닌 날이 있기를 희망하기도 한다.

물론 좋은 쪽의 의미를 희망하나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오늘은 남편의 12번째 항암주사를 맞는 날이다.

어제 밤에 걱정이 되는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었다.

각자의 편의를 위하여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생활하지만

(화장실도 각각 하나이다. 나는 남편의 변기 사용법이 몹시도 불쾌하다. 신혼부터 쭈욱 그랬다.)

화장실 들락달락 하는 소리 및 생활 소음은 밤에는

더 뚜렷하게 들려 나도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여섯시 반 다행히 비는 안오는 지하철역까지 남편을 차로 태워다주었다.

혈액 검사를 해야 해서 빈속에 일찍 병원에 가야만 한다.

병원까지 내가 라이딩하는 것은 절대 허락되지 않는다.

남편의 자존심이다.

아직 나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그 마음을 걱정스럽지만 인정해준다.

어제 오후 물병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은 것을

순식간에 놓치는 바람에 방을 홍수로 만들어놓고

몸을 비틀거리다가 노트북 모서리에 이마를 꽁 찧었다.

부딪힌 표시는 나지만 다행히 찢어지거나 상처가 깊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마음을 상처는 심하게 생겼지 싶다.

방안 가득 물을 닦아내면서

<마침 방 대청소하려했는데 잘되었다.

이럴 줄 알고 내가 밀대를 새것으로 구입했나보네.> 라고

다소 호들갑을 떨어주었는데 아마 나의 연기력이 부족해서 위로하려는 것인지 눈치챘을 것이다.


루틴대로라면 남편을 배웅한 후 브런치 글을 썼어야 마땅한데 오늘은 순서를 뒤바꿔본다.

기다리셨던 구독자분들이 계셨을라나.

월요일 아침이라 다들 바쁘실듯 하다.

아침 일찍 지하 커뮤니티센터 골프연습장에 내려간다.

근 3주만에 연습을 하는 것이다.

다음 주 라운딩 약속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마음이 싱숭생숭할때는 운동을 하는 것이 최고이기도 하고

골프채래도 휘둘려야 내 팔 근육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이다.

다리 근육은 산책으로라도 유지하려 노력하는데

팔 근육은 영 사용할 일이 없어서이다.

그런데 역시 3주만이고 더위를 먹었었고 살이 빠졌으니

공은 맞지도 않고 거리는 확 줄었고 이제는 영낙없는 백순이 신세를 면할 방법이 없어보인다.

풀이 죽어서 친한 후배들에게 하소연을 해본다.

<나는 골프도 강의도 3년이 맥시멈인 듯 해. 그 이상은 힘들 듯. 시한부 인생인 셈이야.>

<뭘 이런 생각을 하시나요. 그냥 지금 할수 있는 것을 즐겁게 하심되지요~~누구보다 잘 살고 계셔요>

<75세 까지 파이팅입니다.>

역시 답정너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하다.


그리고는 강의계획서를 올려둔 것을 컨펌받기 위한 톡을 보내고

친정 부모님의 이천호국원 이장을 위한 사항들을 전화로 확인하고

오늘 방과후 특강 준비물과 강사님을 체크하는 바쁜 아침 일상을 보내고

이제야 브런치글을 작성한다.

브런치글은 나에게는 일기이자 성찰의 시간이고

나를 위로하는 과정이며

직접 뵙지는 못했으나 댓글과 라이킷으로 심정적으로는 매우 가까운 분들과 소통하는 시간이다.

일상이 루틴대로이거나 혹은 아니거나 행복하기만 하면 되었다.

어차피 순서만 바뀔 뿐 해야할 일은 해야하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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