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과 <감사> 사이의 반반
나는 투머치 토커가 절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러놓는 그런 이야기꾼은 절대 아니고
관심 있는 주제이거나 꼭 해야할 말이 있거나 그런 경우에만 말을 참지 못하는 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관심 없는 주제이거나 잘 모르는 이야기이거나 피하고 싶은 이야기에는 아예 끼어들지를 않는다.
제일 싫어하는 주제는 정치와 신앙이야기이다.
그냥 나대로의 생각만 있을 뿐 다른 생각을
서로 나누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런 주제의 이야기는 시작만 있고 끝은 없고
절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수용하지 않는다.
서로 기분만 엄청 상할 뿐이다.
그런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특히 많이 사용하게 되는 어휘가 있다.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자꾸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니 할 수 없다.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 가 바로 그 어휘이다.
아침을 먹고 발가락 튀어나온 부분이 아픈 남편이 신을 신발을 사러 나섰다.
그 부위를 건드리지 않는 신발이 있겠냐만은
그래도 여름 조리가 그나마 제일 나을 듯하여 다이소에 나선 길이었다.
신을지 안신을지 몰라서 제일 싼 것을 골라본다.
비싼 것을 사면 더 뭐라 하면서 안 신는다.
성격 참 괴팍하다. 알뜰함을 넘어선다.
지난번 아들 녀석이 사준 실내복을 기어코
안 입어서(입을 것이 있는데 왜 사왔냐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내가 대신 입는다.
오늘도 신발만 사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만
휴일이 없는 마켓형 약국에도 들러서(이곳 너무 싸고 좋다. 내가 물품을 직접 찾아와야한다는 수고로움쯤은 견딜 수 있다.)
항생제가 들어있는 연고도 사고 드레싱 밴드도 샀다.
그런데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혹은 산책을 하다가 지하철역을 걷다가
옆 사람과 스치는 경우의 발생 빈도가 점점 늘어난다.
내 잘못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입에서는 조건 반사식으로 <죄송합니다.>가 나온다.
그러고 나서 정말 내가 죄송한 일인가를 곰곰 되새겨 보기는 한다만
입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말을 막을 도리가 없다.
오늘 방문한 다이소는 입구와 출구가 다르다.
지난 번 나처럼 입구에서 서성이다가 왜 자동문이 안열리는지를 물어보는 손님이 오늘 또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안심이 되면서도
죄송할 일이 가급적 적게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새 학교에 가니 모르는 것 투성이이다.
어찌 아는 것이 있겠냐만은 시스템도 공간도 아는 것은 몇 가지 없으니
행정직원이나 이번에 정교수가 된 싹싹한 실세 젊은 교수의 도움을 자꾸 받게 된다.
물론 카톡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때도 <감사합니다.>라는 톡을 올려야할 경우가 다반사이다.
한때는 나도 내용을 꿰차고 있어서 다른 사람을
다 도와주고 일을 도맡아서 처리하는 신공을 보였던 사람인데
이제는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하여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세 배는 많은 상태가 되다보니
<죄송합니다.> 아니면 <감사합니다.>의 연속인 날들이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돌아오는 길. 이제는 단골이라고 나름 자부하는 반찬집에서 막나온 달갈찜과 떨이하는 오징어부추전을 샀다.
그런데 내 앞에서 계산하는 내 나이 또래 손님에게
달걀 삶은 것 3개를 서비스로 넣어주는 것을 봤다.
나에게도 준다면 거절하지 않겠다 마음먹고 <감사합니다.>를 장착하고 서있었는데 나는 주지 않았다.
서운하기도 한데
나는 아직 그 반찬집의 VIP 고객이 되려면 멀었나보다
그렇게 쿨하게 생각했다.
어르신 준비-어휘편.
무조건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가 자동으로 튀어나오게 부단한 연습을 하면 된다.
저 두가지 어휘로도 해결이 안되는 일은 정말 중차대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죄송합니다.>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힛수가 더 많았으면 한다.
안되면 오늘 저 하늘 구름처럼
맑은 부분과 흐린 부분의 반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죄송>과 <감사>의 비율이 반반이었으면 한다. 일방적인 <죄송>보다는 훨씬 나은 것 아니겠나.